이번에 확 떠버린 게 루저 떡밥인데 이 떡밥을 보고 갑자기 생각 나는 건 돌아가신 아버지다. 왜 뜬금 없이 아버지냐 하면 그 여학생의 발언에 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우리 아버지랑 그 아가씨의 가치관이 겹쳐 보인다. 올바른 자아를 잃어버린 평균적인 한국인들의 자화상이랄까.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 아버지의 프로필부터 말해 보면 1945년생 해방둥이. 가난한 농촌 출신. 잠깐 우편공무원을 하다 평생 은행권에서 일하셨다. 결혼은 30세 무렵에 하셨고 자식은 나 포함해서 아들 둘. 별로 출세운은 없어서 지점장은 못해보셨다. 아들 둘은 모두 서울시내의 그럴싸한 대학 졸업시켰고 취직도 다들 했다. 손자도 하나 봤고. 은퇴할 무렵엔 강남에 아파트를 두채 가지고 계셨다. 맨날 투기지역이라고 뉴스에 나오는 게 우리 집. 그게 전부이긴 했지만. 친구도 많아서 여기저기 모임도 엄청 많이 나가셨고 인기 참 많은 분이셨다. 울 아버지 장례식에 오신 손님이 아마 뻥 좀 보태서 1000명도 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이정도까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성공하셨네'이다. 그렇지 않나? 부모 도움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강남에 아파트 두채 보유할 정도로 살았다. 은퇴하고 나서도 돈 걱정 안할 정도로 모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대체로 성공한 축에 드는 삶을 사셨다. 아버지 친구분들도 다들 그분께 성공했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불행하셨다.
'남들 처럼 해야지', '남들처럼 멋지게 살아야지', '남들처럼은 해야지', '남들 만큼은', '남들은', '남은',
'남들은...',
'남들은...'
'남들...'
'남들...'
'남...'
아버지의 입버릇이다.
그게 불행의 원인이었다. 항상 남이 하는 것만,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 분은 한번도 자기 자신이 기준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남들은 출세하는데 자신은 출세하지 못했다고, 남들 자식은 박사 학위 있는데 자기 자식은 석사도 못받았다고, 남들은 멋지게 노는데 자기는 못 논다고. 항상 자책하고 항상 부러워하고 항상 괴로워했다. 다들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성공학에서는 성공을 이렇게 정의한다. 본인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남들도 성공했다고 인정하면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남들의 인정은 받았으되 본인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실패한 인생으로 전락했다.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사람이 왜 이렇게 불행의 구렁텅이로 전락했을까? 그것은 자아이미지가 약했기 때문이다. 자아이미지가 약한 것은 마음을 단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양을 쌓는데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있었기 때문에 남을 따라하지 못하면 불행을 느낀 것이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남의 행복을 따라하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평생 출세 못했다고 불행해 했지만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아마 출세 했어도 불행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정신이 빈곤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아니 대부분이 아닐까. 아마 입버릇처럼 남들남들 하는 분들 아주 많을 것이다. 난 루저 발언을 한 여학생이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참 가난하다. 교양이 빈곤하고 상상력이 빈곤하고 가치관이 빈곤하다. 좋은 남자를 떠올릴 때 키 큰 남자 밖에 생각 못하니 얼마나 상상력이 빈곤한가. 키 외엔 다른 가치를 떠올리지 못하니 얼마나 가치관이 빈곤한가. 그정도의 상상력과 가치관 밖에 만들 수 없는 교육을 받았으니 얼마나 교양이 빈곤한가. 이런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할까.
전쟁과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나오는 데에만도 온 힘을 다해야 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에겐 그래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 그런 거 생각할 틈 없이 살았다고. 이제 와서 어쩌라고. 솔직히 나이 들어 안돌아가는 머리로 책 읽고 교양을 쌓고 마음을 단련하는 건 정말 보통 노력가지고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한 소시민인 우리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젏은이들이 뭔가를 느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건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뭘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 소중하게 여기게 된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뭔가가, 그러니까 키라든가 아파트라든가가 소중하다면 그건 단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일 뿐일지도 모른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오로지 남에 의해서 그 의미가 부여된 것이라면, 아마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ps. 평생 남들 눈치만 보고 살았던 아버지 덕분인지 나와 동생, 어머니는 진짜 고집장이들이다.
덕분에 모이기만 하면 언제나 난리가 난다. 어쩌면 이게 행복인지도 모른다.
ps2.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일가족이 다 루저. ㅋㅋㅋ 이거 진짜 웃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