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07일
다크 나이트
크리스찬 베일,히스 레저,애론 에커하트 / 크리스토퍼 놀란
나의 점수 : ★★★★
배트맨 시리즈를 본 것은 이번이 네번째다. 팀버튼의 배트맨은 말 그대로 배트맨의 교과서였고 다른 시리즈는 솔직히 말해서 그냥 오락거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크 나이트는... 제목에 배트맨이 없는 이유를 알겠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던 조커는 잭 니콜슨의 조커다. 미쳤지만 이유가 있어서 미쳤고 광기라기엔 냉철함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말 그대로 잘난 악당의 대명사 조커. 그 조커는 나름 유쾌한 부분이 있었다. 니콜슨의 성격도 한 몫 했으리라. 대규모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거기엔 유머감각이 있었고 한바탕의 쇼가 곁들어진 공포와 광기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히쓰 레저의 조커는 밑바닥이 없는 늪이다. 한없이 어둡고 한없이 비열하다. 유쾌한 장난은 사라졌고 분장은 문드러져 땀과 오물로 얼룩진 맨얼굴을 보여준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그 늪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첫 장면부터 배신에 배신이 거듭되는 혼탁함 속에서 정의는 온데 간데 없고 옳고 그름의 분간마저 모호하다. 정의감 넘치던 검사는 원귀가 되고 배트맨은 괴물이 되어 버렸다. 이 영화에서 행복해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조커는 말한다. 너도 나와 같다고.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어 버리는 딜레마는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조커는 이유 없는 악이다. 조커는 모든 것을 타락시킨다. 조커가 만드는 악의 세상은 모든 것이 뒤엉켜 있는 카오스 그 자체다. 이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커를 잡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배트맨은 악당의 오명을 뒤집어 쓴다. 바로 흑기사(다크 나이트)가 된 것이다.
조커는 미국인들이 보는 악, 바로 그것이다. 조커의 한마디에 아비규환이 되는 고담 시티는 9.11 이후 미국의 모습이다. 다크 나이트가 된 배트맨은 미국 자신이다. 미국은 더 이상 슈퍼맨이 아니다. 밝고 깨끗한 미국은 어디에도 없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행동을 비난하고 협조도 하지 않는다. 정의의 사도인 줄 알았던 사람은 똑같은 악당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미국은 오명을 뒤집어 쓴 다크 나이트가 되어 세계를 지켜야 한다. 이상이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혼탁하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미국은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절박한 메시지가 이 영화에는 들어 있다. 이러니 매일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영화가 바로 이거다.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미국인들의 가치관은 이렇게 시대가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미국인들이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한편으론 얘네들하곤 여전히 힘들겠구나 하는 막막함도 느낀다. 이게 미국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인가 하는 느낌도 들고 미국의 쇠락을 나타내는 징후로도 읽힌다. 앞으로도 한동안 미국에서 흥행하는 영화는 이 영화처럼 어둡고 무거운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만큼 미국이 많이 힘들고 전망도 밝지 않다.
ps. 별표 4개인 이유는 영화 보다 몇 번 하품했기 때문. 영화는 숨돌릴 새 없이 전개되는데 2시간 30분은 좀 길었다. 그것만 빼면 만점 줘도 부족하다.
# by | 2008/08/07 16:13 | 후기+감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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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과는 거리가 먼(저도 물론 원작만화를 다 찾아 읽은 매니아는 아닙니다만), 동화적으로 괴기스런 팀 버튼의 고담시티와 악당들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