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여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녀는 하숙집의 관리인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쉽게 고백은 못하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여자 주인공만 모릅니다.
그리고 같이 사는 동거인들이 있습니다. 오타쿠 꼬마, 체육계 보케, 폐인 선생, 그리고 나중에 합류하는 부잣집 아가씨.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죠? 뭐 뻔하잖아요. 메종일각 이래 유사가족물의 전형 같은 배치 아닙니까.
이런 종류의 작품,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마호라바, 하야테처럼, 러브히나, 쪽보다 푸른, 기타 등등 잔뜩 있죠. 참 징하게도 많이 그려냅니다. 그래도 이런 게 재밌습니다. 참 신기하죠.
다케다 순의 '걸어서 한걸음'은 이런 유사가족물이면서 한편의 학원 코미디입니다.
배경을 먼저 살펴 봅시다.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는 고등학교 한 복판에 있습니다. 학교를 증축하는데 그 아파트만 안 팔았다나요뭐라나요. 덕택에 학생들이 오고 가면서 집안 살림을 다 들여다 봅니다. 빨래 너는 것도 옆 교실에서 다 보이고요. 유사가족물이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을 학교와 가정의 밀착화라는 공간배치 하나로 확 깨버렸습니다. 연재 첫 장면에서부터 학교 한 가운데 있는아파트를 보여 주면서 독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학교 한 가운데 집이 있는 덕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학교가도 된다든가 학교 풀장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든가 하는 거는 그 배치에서 나오는 쏠쏠한 잔재미 중 하나지요.
주인공을 볼까요. 가난뱅이입니다. 여자들 속에 둘러 싸여 있구요. 여자들한테 잘 휘둘립니다. 여기까지야 흔한 설정입니다. 그런데제법 잘났어요. 공부를 잘 해서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성적 1등을 놓치지 않습니다. 운동도 잘합니다. 딱 하나 컴플렉스가있는데 가난뱅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그 사실을 열심히 숨기고 다니죠. 누군가가 생각나죠? '타로 이야기'의타로지요. 하지만 타로처럼 구질구질하진 않습니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꽤 괜찮은소년입니다. 딱 하나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있는데 그건 연애지요. 좋아하는 여자하고는 자꾸 꼬이고 원치 않는 여자는 자꾸달라붙죠. 뭐 연애까지 제 맘대로 되면 만화가 진행이 되겠어요? ^^;;;
여주인공을 볼까요. 네. 엄마입니다.여신님입니다. 끝. 이런이런, 남주인공은 구구절절 설명해 놓고 여주인공한테 너무했네요. 근데 딱히 설명할 말이 안 떠오릅니다.너무 전형적인 캐릭터라서요. 그래도 충분히 매력적이긴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쪼들리면서 매일 감자만 먹어도 매력적인 건 매력적인겁니다.
다른 캐릭터들이 더 재밌습니다. 오타쿠는 알고 보니 괜찮은 집 아가씨였다든가, 운동 보케는 알고 보니 꽤나예쁜 청순녀 타입이었다든가, 선생은 구제불능이라든가, 부자집 아가씨는 꽤나 폭력적이었다든가. 뭐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동글동글 쭉쭉빵빵한, 귀여우면서도 늘씬한 캐릭터와 깔끔한 그림체를 가지고 기존의 재밌는 요소들을 적당히 잘버무린 다음 훌륭한 연출로 자기만의 요소를 살려서 내놓은 상큼유쾌발랄한 작품입니다. 기본이 잘 잡힌 작화와 연출은 시각적으로도상당히 유쾌한 기분을 줍니다. 장르가 되어버린 유사가족학원연애물(개인적으로는 메종일각류라고 부릅니다만)입니다만 뭐 볶음밥엔 새우볶음밥도 있고 버섯 볶음밥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맛있으면 그만이죠. 가벼운 기분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한다면서이만 마무리.
이미지 출처: 학산문화사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