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하고 나서... by 함부르거

지난 주말에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갔습니다. 여름 동안에 덥다고 안갔더니 산소까지 올라가는 길에 사람 키를 넘는 풀들이 빽빽하더군요. 그거 깎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내년 봄에는 거기에 제초제를 뿌릴 생각입니다. 다행히도 아버지 산소는 잔디가 잘 자라서 이제는 제법 모양이 좋습니다. 잔디가 자란 부분은 잡초 제거도 별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죠. 헌데 잔디가 너무 웃자라서 썩는 녀석까지 나옵디다. 잔디의 품종이 서양 거라 그런지 빽빽하고 길게 자라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금잔디랑은 다르게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자주 깎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아버지 두 분이 예초기를 써서 작업을 하셨는데 예초기의 성능 차이가 크더라구요. 하나는 일제 미츠비시 거였고 다른 하나는 국산 LG엔진 거였습니다. 미츠비시 거는 소리도 작고 회전수도 낮은 거 같은데 아주 잘 깎이더라구요. 당연 실수도 적어지고요. 그런데 국산은 회전수도 높고 소리는 엄청 크고 무엇보다 같은 면적을 깎는데 연료를 2배 이상 먹습니다. 비교해 보면 미츠비시 예초기는 회전수는 낮지만 토크가 강해서 잘 깎이고 국산은 회전수를 높여서 출력을 확보했지만 연비도 절삭능력도 별로인 것 같습니다. 똑같은 2사이클 휘발유 엔진을 쓴 간단한 기계인데도 이렇게 성능 차이가 나니 이게 기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조심했는데도 모기에 쏘이고 풀독도 올라서 좀 괴롭습니다만 기분은 너무 좋습니다. 아버지 산소를 갈 때마다 아버지가 제 곁에 계신 것 같고 너무나 편안하고 산소를 보살펴 드리면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렸어야 한다는 후회는 언제나 할 수 밖에 없지만요. 아버지와 조상님들 산소를 돌보면서 참 여러 가지를 느낍니다. 이래서 우리 조상님들이 그렇게 아들 아들 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내가 죽은 다음에도 아버지 산소 보살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상을 모신다는 게 그리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1년에 3번 정도 차례, 제사 지내고 벌초 좀 하면 되죠. 벌초도 옛날엔 낫 가지고 했지만 이젠 다 기계로 할 수 있잖아요. 정성과 공경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게 참 많습니다. 일단 그런 일에 대해 좀 공부도 해야 되고 경제력도 갖춰야 합니다. 집안에 그런 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나 해도 안되겠죠. 한마디로 수신제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론 그렇게 조상을 잘 모시게 되면 저절로 수신제가가 되기도 하죠. 효자한테서 효자 나온다고 열심히 조상을 섬기고 그걸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집안에서는 당연히 착한 자식들이 길러지지 않겠습니까.

써놓고 보니 제사문화가 곧 동양문화의 근본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무덤을 보살피는 일에서부터 모든 윤리 도덕과 학문이 나온 것이죠. 조상의 제사를 모실 자식을 기르기 위해 가정윤리가 생겨나고 조상의 무덤을 짓기 위해 농업과 병법과 건축이 발달하지 않았겠습니까. 조상께 보은하는 것은 곧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지면서 올해 벌초는 마무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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