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 이제야 보다 by 함부르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나의 점수 : ★★★★★


원제 千と千尋の神隱し, 이하 센치카미.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란 이름을 감히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언제나 미야자키 선생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에게 있다. 그이와  내가 무슨 관계라고 그럴까만은, 내 인생에 미야자키 선생이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빼 놓을 수가 없다. 그가 자기 이름을 걸고 내놓은 작품들과 지브리의 작품들은 사춘기 이후의 내 감성과 취미와 인간관계까지 결정지어버렸다.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기억과 본연의 순수한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내 영혼의 가뭄에 뿌려지는 단비와도 같았다. 아아, 하나하나 그의 영화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 안의 초록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런 감동과 추억을 선사해 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나란 놈은 인간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미야자키 선생님'이라고 한다. 감사와 존경과 애정을 담아서.

이토록 존경하는 미야자키 선생님이지만 나는 불행히도 - 정말 불행히도 - 그의 작품을 다 보지 못하였다. 아직 개봉 안한 포뇨야 그렇다 쳐도 센치카미와 마녀의 택급편은 안보고 있었다. 이 작품 말아니 팬이라면서, 존경한다면서 무슨 웃기는 이야기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난 90년대 중반에 나우시카를 극장에서 본 이후로 지브리 애니는 무조건 극장에서 본다는 게 원칙이다. 마녀의 택급편도 센치카미도 불가피한 사정으로 개봉을 놓쳤고 덕택에 지금까지 안보고 있었다. 센치카미는 이번에 메가박스에서 재개봉을 해준 덕에 볼 수 있었다. 포뇨의 흥행을 위한 마케팅이란 것은 뻔히 알지만 그래도 고맙다. 왠만하면 택급편도 같이 해주지 그랬나. orz

센치카미가 제작된 경위에 대해서는 왠만한 애니 팬이라면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설명한다. 원래 미야자키 선생님은 모모노케히메 이후 은퇴를 했었다. 감독은 더 이상 안하고 제작으로 물러난다는 것이었는데, 귀를 기울이면의 곤도 요시후미 같은 후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98년 곤도 요시후미가 요절해 버린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선생님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이끌어 오던 체제였다. 다카하타 감독도 미야자키 선생님도 은퇴해 버렸으니 지브리는 표류하게 되었고 결국 미야자키 선생님은 은퇴를 번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컴백하고서 처음으로 만든 장편 극장판이 바로 센치카미인 것이다. 플롯이나 수상경력 따위는 검색 한번 하면 다 나오니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동안 나는 미야자키 선생님 필모그래피의 정점은 모노노케히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사상의 진면목이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게 진화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센치카미를 보고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다. 화면은 더욱 유려해 졌고 연출은 여유가 있어졌으며 감성은 더욱 풍부하고 인물은 아름다워졌다. 모노노케히메에서 느껴졌던 불안과 피로와 긴장감이 사라지고 대신 편안함과 활력이 느껴진다. 아마 은퇴하고 쉬는 동안 감성이 재충전되고 노인다운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센치카미를 안봤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떠오른 말씀이 있다.

天地大八門이요 日月大御命이라
천지대팔문     일월대어명

禽獸大道術이요 人間大積善이라
금수대도술     인간대적선

時乎時乎鬼神世界
시호시호귀신세계

<증산도 도전 5:196>

하루는 증산께서 복남을 데리고 어디를 가시는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머리카락 한 올을 복남에게 주시고
수백 명이 모인 번잡한 곳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기 사람이 많으니 이것으로 비춰 봐라.” 하시니라.
이에 복남이 말씀을 좇아 눈에 머리카락을 갖다 대고 사람들을 비춰 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개, 돼지를 비롯한 온갖 짐승으로 보이고 그중에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더라.
이윽고 증산께서 “다 봤냐?” 하시더니 머리카락을 도로 뺏으시어 불태우시니라.

<증산도 도전 1:75>

선천에서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증산도 도전 11:250>

시호시호귀신세계여! 신명세계를 이처럼 잘 표현한 작품이 얼마나 또 되겠는가? 신명의 세계에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선행을 베풀면 보답을 받고 악행을 저지르면 응보를 받는다. 이 세상도 그러하나 다만 선천에는 우주가 뒤틀려 있어 그대로 보이질 않을 뿐이다. 센도 노력과 선행을 통해서 보답을 받은 것이지 그냥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금수대도술이라 남을 빼앗고 짓밟는 자가 성공하여 왔다. 그리하여 신안으로 보면 참된 사람은 100명 중 하나 될까 말까다. 겉 껍데기는 사람인데 속 마음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신명들은 자기 모습을 위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칠게 보일지 모르지만 진실하다. 센의 부모가 돼지가 된 것에는 인간의 이러한 마음이 보이는 것이다. 치히로를 보라. 세상에 사람으로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

센치카미에 나오는 신명들은 정확히는 원신(元神)이라고 부른다. 자연신(自然神)이라고도 한다. 본래부터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신들을 말한다. 인격이 없는 신이고, 자연물에서 나온 신들이기 때문에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는 것은 기압차와 전위차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설명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신명의 작용이 있고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신이다. 그 이치가 너무나 기기묘묘하여 말로는 설명이 다 안될 정도다. 이 작품은 그런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저들이 모두 신명이구나, 귀신이구나 하는 정도만 알고 마음을 비우고 감성을 열고 보면 이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야자키 선생님이 많이 충전된 상태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구나 하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작품 전체에 걸쳐 따뜻한 인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노노케히메도 같은 자연신의 세계를 다뤘지만 거기에는 철저한 인과응보의 법칙 말고는 그다지 인간미가 없다. 본래 자연의 세계가 그러하기도 하지만 약육강식의 철저한 법칙이 적용되는 그 곳은 어쩐지 다가가기 힘들고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센치카미에서도 그러한 인과응보의 대원칙은 철저히 적용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인간미가 있다. 신명들도 인간이 만든 발명품 - 목욕탕 -을 이용하기도 하고 불쌍한 아이도 도와주고 거래도 하고 욕심도 있고 티격태격도 한다. 거기에는 인간화된 신명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듯, 자연도 인간에 적응한 그 모습이 정겹다. 요약하자면 모노노케히메는 자연 속으로 들어간 인간, 센치카미는 인간 속으로 들어온 자연이라고나 하겠다.

캐릭터에 관해 말해보겠다. 먼저 하쿠는 지브리의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너도 나도 그리려고 졸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지 미소년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니 너무 매력적이다. 내가 여자라면 저런 남자한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자상하고 다정한데 어떤 여자가 안넘어갈까. 린은 마누라 삼는다면 저런 여자라는 느낌이다. 똑 부러지는 알뜰함에 인정도 가지고 있다. 유바바와 제니바는 미야자키 선생님의 분신이다. 혹독하게 부하들을 몰아치는 잔소리쟁이면서 후배들의 복지를 누구보다 신경쓰는 인자한 영감님 아닌가. 아마 지브리의 애니메이터들은 유바바 자매를 그리면서 그들의 영감님을 안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가오나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마(魔)다. 이 선천 세상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마(魔). 세상이 뒤틀려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 목적도 희망도 없이 맹목적인 욕구만이 존재하는 그 무엇. 인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치히로는 그것을 외면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고 오로지 똑바로 쳐다보고 지혜롭게 다스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 속 어둠에 대한 태도는 마땅히 이런 것이어야 하리라.

글이 쓸 데 없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 보고 마음이 따뜻해 지면 좋겠다. 우리 주변의 신명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들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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