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갈림길

공명의 갈림길이란 NHK 대하사극이 있습니다. 2006년도에 방영했던 것인데요. 조그만 땅의 영주였다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토사 20만석을받은 행운아 야마우치 카즈토요와 그의 아내 치요의 일대기입니다. 채널J에서 요즘 방영하길래 한 화씩 보다가 필 받아서 몰아서 다봐버렸습니다.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저런 마누라 있었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나카마 유키에가 예뻐서가 아니구요. (^^;;;) 드라마 속의 치요가 너무 현명한 겁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현처(賢妻)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에 비해 남편은 의리 있고 성실하지만 처세술도 서툴고 정치감각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요령이 없어요. 그 남자 그 아내가 없었으면 출세는 커녕 어딘가의 전장에서 시체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 남편을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잘 내조하면서 결국 큰 출세로 이끄는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서로 감싸 안으면서 난세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 아내가 있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나갈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야마우치 카즈토요는 오케하자마 전투서부터 세키가하라까지 일본 전국시대의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 참전했던 무장입니다. 당시로서는 60까지 오래 산 덕분에 전국시대 말기를 완전히 관통한 인물이지요. 덕택에 드라마에서도 그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나옵니다. 야마우치 부부를 강조하려다 보니까 그 모든 사건에 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나온, 약간의 역사왜곡도 있지만 참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기차게 좋습니다.

노부나가 역의 다치 히로시, 히데요시 역의 에모토 아키라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은 연기였죠. 정말 신들렸달까요. 두 사람 모두실제 인물들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카즈토요 역의 카미카와 타카야는 처음엔 창술도 서툴더니 점점 연기가좋아져서 나중엔 진짜 그럴싸 하더군요. 치요 역의 나카마 유키에는 처음엔 매력적이고 좋았는데 나중에 40대, 50대 나이대를 연기하면서도 머리모양만 바뀌고 주름살 하나 안 넣는거 보면서 좀 질려버렸달까요. 이치히메 역의 다이치 마오 아줌마는 나이를 확인해 보니 56년생... orz 어째 처녀 연기는 어색하고 애 엄마 연기는 신들린 듯 하더라... 그 나이에 그런 팽팽함이라니 반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제 생각이 바뀐 게 있어요. '히데요시는 진짜 나쁜놈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에는 히데요시를 그렇게 나쁘게 안봤거든요. 우리 나라 입장에서야 임진왜란을 일으킨 악당이지만, 그건 사실 모진 놈들을 이웃하고 있는 우리 나라가 재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인간적으로 꽤 매력 있는 인물이긴 하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여동생을 강제로 이혼시켜 이에야스에게 시집보내는 장면하고 조카 히데츠구를 할복시키고 그처자를 다 죽이는 걸 보면서 히데요시란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혐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10년 넘게 잘 살던 부부를 억지로 떼어서 정략의 도구로 쓰는 것도 모자라 자기 어머니까지 인질로 보낸다는 건 참 모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그렇죠. 무엇보다 히데츠구를 죽인 것은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순 있어요. 후계자 문제를 정리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39명이나 되는 그 처자들을 모두 죽인 것은 정말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장면 보면서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어요. 그런 걸 보면 사람 죽이는데도 정도랄까 규율이랄까 이런 게 있다고 봅니다. 그 상도를 넘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게 아닐까요. 그렇게 했는데도 집안은 망하고 후손은 끊어진 것을 보면 천도는 어긋남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진나라는 장평에서 40만 조나라 포로를 학살했고 항우는 진나라병사 20만을 생매장했지요. 둘 다 나라는 망하고 그 후손도 끊어지고 말지 않았습니까?

암튼 재미 있는 드라마였지만 이런 장편을 소화하려니까 많이 힘드네요. NHK 대하사극은 함부로 손댈 게 아닌 듯 합니다.

by 함부르거 | 2009/03/11 17:25 | 후기+감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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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9/03/11 23:01
저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카가 백만석 때의 히데요시보다 이 때 히데요시가 진짜 어울렸지요. 이에야스도 그렇고. 뭐 학살 관련이라면 이성계도 고려왕씨 수백명을 몽땅 살륙한 바가 있죠...

* 다이찌 마오는 원래 타카라즈카 배우 출신입니다. 피겨선수 아사다 마오의 이름이 그녀에게서 따온 거지요.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09/03/12 00:03
다이치 마오 아줌마는 경력이 화려하더라구요. 다카라즈카 배우들이 옛날부터 미인들이 많은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 아사다 마오 이름 관련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히데츠구 처자들 처형 이야기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활자로 보던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느껴지는 게 다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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