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한국, 제국과 야만족 by 함부르거

이 글은 그냥 생각만 하고 쓰지 않고 있던 것인데 오늘 쌍용차 사태를 보고 쓸 생각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한국인 특유의 기질과 도전정신을 이유로 들곤 한다. 그러면서 꼭 나오는 레퍼토리가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정신이 없다느니 의지가 약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다. 나는 그런 종류의 정신만능론은 꼭 2차대전의 일본군을 보는 것 같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 그놈의 '한국인 특유의 기질'이란 게 있기나 한건지 의심스럽다. 나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이 있다면 철학과 종교의 정신문화면에서 찾아야지 결국엔 돈과 숫자로 계산되는 경제분야에서 찾을 게 아니라고 본다.

내가 우리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이른바 기질의 기여를 의심하는 이유는 그것이 꼭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 발전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꼭 우리의 70년대 보는 것 같다고 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날고 기는 기업가들이 엄청난 창의성과 근면성으로 자본주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 땡전한푼 안쓰고 모으던 게 우리만이 아니란 이야기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그렇게 경제를 발전시킨 것도 꼭 한국인이기 때문에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인 것이다.

5호16국 시대의 5호 중 하나로 선비족이 있다. 이들은 '가장 늦게 중원에 들어온, 그래서 가장 야만적인, 이른바 생번'[1]이었다. 그런데 가장 야만적인 이들이 강북을 통일하고 이른바 성당치세의 기초를 닦는다. 선비족 뿐만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야만족들은 문명국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연다. 게르만족, 몽골족, 아랍인[2], 여진족, 기타 등등.

왜 한국의 경제발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옛날의 야만족들 이야기를 하냐 하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바로 이런 야만성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야만인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수행한 역할이 중국에 대해 북방 유목민이, 로마제국에 대해 게르만족이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명이란 것은 발전하면 할 수록 안정화,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다. 생산양식이 성숙하면서 사회계층이 고착되고 변화가 적어진다. 이것을 다른 측면으로 보면 노쇠와 부패인데, 이는 역사 속의 거의 모든 문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안정되고 고착된, 노쇠하고 부패한 제국을 깨부수고 새 문명의 기틀을 닦는 것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야만족들의 몫이었다. 야만은 문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 나태하지 않게 하는 상극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된 것은 길게 보면 일제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상당히 늦은 것인데, 우리가 세계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한 1950년대에는 이미 서구 선진국들은 수정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자본주의 문화가 성숙한 상태였다.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이' 세계 시장경제에 뛰어든 우리는, 숲 속에서 벌거벗고 살다가 갑자기 로마제국의 포장도로와 수도와 도시를 보게 된 롬바르드족 같았다고 할까. 다른 나라가 몇만톤 짜리 배를 만들고 고층빌딩을 짓고 몇 킬로미터의 다리를 놓던 시절에 우리는 연필 하나도 못만들고 있었다. 단지 기술과 생산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문화와 제도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노동3권, 주주자본주의,  이런 것들은 우리에겐 1990년대 이후에나 가시화 되기 시작한 것이지만 서양에선 상식이다 못해서 아예 생활화가 된 것이다.

야만성의 가장 큰 특징은 룰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명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예의범절이나 법률은 야만인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이것은 문명인들이 야만인을 볼 때의 시각이고, 정확하게는 문명인과는 전혀 다른 룰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민간인을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문명국가의 룰은 현지인과 포로를 화살받이로 사용하는 몽골의 룰에 무너졌다. 노동권과 주주자본주의의 룰은 한국인들에겐 의미가 없었다. 주식회사라도 오너의 독단으로 운영되었고 공단 여공들은 19세기 영국과 다를 바 없는 노동환경에서 불구가 되며 일했다. 그것이 경제성장의 기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요컨데, 한국은 야만적이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역사 속에서 문명세계를 정복한 야만인들은 꼭 두가지 길로 갔다. 자신들의 방식을 지켜가며 멸망해 가던가, 기존 문명을 받아들여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던가.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지키다가 결국 원래 나왔던 곳으로 쫓겨 갔다. 선비족은 적극적으로 한화 정책을 벌인 결과 민족 자체가 한족에 흡수되어 버렸다. 만주족은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문명세계를 정복할 만한 힘이 있던 민족이라도 숫적으로 열세이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능력이 없는 한 기존 문명의 질서에 흡수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기존 문명의 질서란 것은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강력한 관성이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벗어나기는 어려워진다. 좋게 보자면 문명화되어야 하고 나쁘게 보자면 고유성을 잃고 타락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있어 IMF 사태의 충격은 비견하자면 북위 효무제의 한화정책에 비교할 수 있겠다. 북위의 선비족은 하루 아침에 조상의 옷과 언어와 풍속을 금지당했다. 한국의 경제계는 갑자기 국제적인 룰에 따를 것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는 사람, 적극적으로 나서서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나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더이상 한국은 자본주의 세계의 어린아이가 아니란 것이다. 한국은 성공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에 정착한 국가이고 이젠 발전된 국가로 꼽힌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식민지를 원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발전했다.[3] 우리는 덩치가 커졌다. 그리고 크기의 변화는 질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이제 한국만의 룰, 한국만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문제들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시대는 효무제의, 쿠빌라이의, 샤를마뉴의 시대처럼 변화를 요구한다.

문명화는 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야만적일 때는 임의로 해도 되던 것을 규범에 맞게 행하는 것이 문명이다. 한국 자본주의도 이러한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외형은 자본주의 선진국이지만 의식과 문화는 아직 야만적 원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노동, 자본, 국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 한국사회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의식은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룰을 어떻게 정하는가다. 효무제는 무조건 한(漢)을 따라하다 선비족이 사라졌다. 카이두는 무조건 옛날식으로 하다가 결국 망했다. 남을 무조건 베끼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모른 척하는 것도 문제다.

나는 아랍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지금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아랍이 아니라 한창 비잔틴과 페르시아를 발라버리던 시절의 아랍이다. 아랍인들은 비잔틴도 페르시아도 정복했고, 그들의 문화도 받아들였지만 그들에게 동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를 그들에게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비잔틴과 페르시아에 비하면 한줌도 안되던 소수의 야만족이 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그들은 그들만의 룰, 문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슬람교다. 비잔틴과 페르시아가 한창 절정에 달했던 시기, 그래서 오히려 살짝 내부에서는 금이 가기 시작하던 전환기, 그 때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라는 새로운 질서를 들고 나왔고 문자 그대로 세계를 휩쓸어 버렸다.

여기에 우리의 가능성이 있다. 지금 자본주의 세계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세계는 자본주의로 통일되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새로운 룰, 새로운 질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다면? 나는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몽골제국은 조상들의 복수를 하면서 일어섰고 이슬람교는 조상들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옛 것을 돌아봄으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사의 법칙이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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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야자키 이치사다, 중국중세사, 1996, 신서원
[2] 오늘날의 아랍문명을 보면 잘 떠올릴 수 없는데, 아랍인들은 페르시아와 비잔틴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전엔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소수야만족에 불과했다.
[3]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이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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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복솔군 2009/08/05 19:45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을 보면 독일과 일본도 과거엔 '미개인' 취급을 당했다지 않나요..
    여하간.. 그 사실을 알고는 마지막 남아있던 베버 사상의 찌꺼기까지 바이바이..
  • 함부르거 2009/08/05 21:35 #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문명의 오만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천지화랑 2009/08/05 23:28 #

    백범일지가 생각나는군요.
  • 함부르거 2009/08/06 01:21 #

    황송합니다. 제 졸문의 어디가 그런 생각을 나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_-)(_ _)(-_-)
  • ㅋㄹㄷ 2009/08/06 03:25 # 삭제

    무리에요.그런거.'ㅅ'
  • ㅋㄹㄷ 2009/08/06 03:25 # 삭제

    알고잇잖아요 다들 10년후면 장께한테 밀려 누구나라 떵구녁이나 빨거라는거.

  • 월광토끼 2009/08/22 04:24 #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동의합니다.
  • 함부르거 2009/08/22 15:03 #

    감사합니다. (꾸벅)
  • 목구멍사또 2009/09/01 11:55 # 삭제

    위대한 사상이 반드시 대국에서 나오라는 법은 없습니다.

    누가 더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세상을 대하느냐의 문제겠지요.

    똘레랑스의 개념처럼, 모두가 공존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으면, 우리역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앞선 민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배주의는 무조건적 낙관론자와 무조건적 비관론자들에게서 모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사고,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 함부르거 2009/09/01 12:24 #

    원래 위대한 사상은 완전히 변방도 아니고 중심도 아닌 제국의 변두리에서 나오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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