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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랜만에 본 '영화'라 감개무량합니다. 흑흑 영화관도 없는 이놈의 오지는ㅠ.ㅠ 적어도 돈은 아깝지 않았달까요.
작품에 깔려 있는 배경과 설정은 매우 방대한 것 같은데 거두절미하고 그냥 뚝 주제만 던져주는 것은 역시 오시이 마모루 퀄리티입니다. 2시간에 걸치는 런닝타임은 이러한 불친절함에 대한 보상이랄까요. 영화 보고 나서 생각하고 따지고 할 것 없이 영화 보면서 생각하면 됩니다. 공백이 길고 여유가 있는 연출이어서 더더욱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하도 정신 없이 몰아치는 영상물들만 보다가 이런 고전적인 연출을 만나니까 오히려 신선합니다. 찬찬히 느끼고 생각하고 곱씹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느린 템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네요. 관객에게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영화입니다. 오시이 감독이 그동안 돈 많이 벌었나 봐요. 이렇게 맨날 예술하고 있습니다. ^^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라면 역시 화끈한 공중전 시퀀스입니다. 에어리어88, 마크로스로부터 쌓아 온 일본 애니메이션의 공중전 장면의 정점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 할리우드에서도 이정도 공중전 연출은 힘들 겁니다. 프롭기로 가능한 거의 모든 기동을 다 보여주니 공중전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기분입니다..
내용은 음... 주인공의 실존적 고뇌를 말해준달까요. 인간이 인간으로서 실재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무엇을 근거로 인간은 존재하는가? 과연 내가 느끼고 만지고 보는 것이 내 실재를 증명해 주는 것인가? 기타 등등등 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자기 존재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주인공의 숱한 정사씬(에로씬은 1%도 없습니다만 ^^), 쿠사나기의 아이, 전투, 심지어 신문을 또박또박 접는 습관까지. 어떻게 보면 키르도레란 존재는 과거로부터 단절돼서 현재에 부유하고 있는 현대인의 상징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각기동대에서 네트워크 상의 정보집합에 인격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에선 살과 피가 있는 인간이라도 뿌리 없이 부유하는 영혼이 인격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여주인공 쿠사나기가 좀 무섭습니다. -_-;;; 별장에서 주인공을 유혹하는 장면, 그러니까 식사 도중에 '자고 갈래?'하면서 옷을 하나씩 벗는 장면은 보통 섹시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그 장면에서 오히려 무섭더라니까요. 나만 그런건가? 암튼 여주인공의 파워가 다른 모든 인물을 압도하는지라 주인공이 전혀 주인공같이 안느껴져요. 그동안의 오시이 작품의 여주인공들 중 가장 무서운 타입인 것 같습니다. 너무 인형같이 생겨서 인간같지 않은 느낌인데 일부러 노린 디자인이예요. 암튼 예쁘긴 예쁘죠. -_-;;;;
메카닉 이야기를 하자면 2차대전의 프롭기 기술이 계속 발전했다면 저런 형태의 전투기들이 나왔을 거라는 느낌이 드는 기체들입니다. 현실세계에선 제트기가 등장하면서 존재가치가 없어진 실험기들이 이 영화 속에선 리얼하게 활약합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데, 카와이 켄지의 음악이 적절하게 들어가면서 영화에 잘 녹아 있습니다. 음악 자체도 좋아서 OST를 찾아봐야 할 듯. 그런데 정작 중요한 장면들은 음악이 없는 장면들입니다. ^^ 음향효과도 아주 좋은데 문 열리는 소리라든가 이런게 진짜 실감납니다. 영화관이 좋아야 그런 기분이 들겠지만요. ^^
영화를 보고 나니까 원작소설이 읽고 싶어지는데 번역본이 없네요. -_-;;;; 소설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해야겠습니다. -_-;;; 아니 안그래도 하긴 해야 하는데... 영어판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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