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책) by 함부르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박스판 - 전7권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나의 점수 : ★★★★★






어제 잠이 안와서 1권만 읽고 자려고 예전에 사 놓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박스셋을 집어들었습니다.

...
......
.........


짐작하다시피 새벽 3시까지 못잤습니다. ㅠ.ㅠ 예전에 읽었던 거라고 방심했어요. 미야자키 선생 작품은 애니든 만화든 뭐든 절대 수면시간 근처에 보면 안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띵띵 부었어요... ㅠ.ㅠ 예전에 라퓨타로 비슷한 경험을 하고 또 이러네요. ^^;;;

......

여담은 각설하고, 7권까지 다 읽고 나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난 지금까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 내가 믿는 것이 과연 진실된 것인지, 내 마음 속의 어둠은 어떤 것인지, 과연 이 세상의 사람들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지... 온갖 상념에 한참 기도를 하느라 또 못자고... 잠깐 잠이 들었다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깨니 중천엔 달과 별빛 이 그득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미야자키 선생 이 양반은 진리의 한소식에 한 발 정도는 걸쳤습니다. 만화 하나로 사람에게 인생과 세계, 우주에 대해서 영감을 주는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흔히들 한 작가의 첫 작품에는 그 작가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하지요. 나우시카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거신병은 라퓨타에, 하루만에 자라는 부해의 식물은 토토로에, 메베는 키키의 빗자루로, 화려한 공중전은 붉은 돼지에서 다시 꽃피어 납니다.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되어서도 살아가는 나우시카의 모습은 모노노케히메의 테마와 연결되고, 인간의 죄업이 뭉쳐 있는 가오나시는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티는 도르쿠 황제의 망령과도 같지요.

이 때까지의 미야자키 선생은 고통과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도르쿠 황제와 토르메키아의 황자들은 정원과 청정의 땅에서 안식을 얻지만 나우시카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낙원은 인간이 만들어낸 꿈일 뿐, 현실의 인간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고통스런 자각이 거기에 있습니다. 과연 노동운동하던 사회주의자다운 현실인식이랄까요. 나우시카의 결론은 너무나 허무하고 가혹합니다. 생이란 권리이자 의무이기에 고통스럽더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종교와는 별 관계 없는 양반이 종교적인 결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일지도 모릅니다. 나우시카의 이야기는 끝났어도 그 땅의 사람들에게 삶은 계속되니까요.

미야자키 선생의 작품들이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많은 감동을 주었던 것은, 그 이면에 삶과 인간, 세계에 대한 선생의 고통스런 성찰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나우시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선생 마음 속의 고통의 늪이 피워낸 연꽃이었던 거지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겁니다. 

개인적으로 벼랑 위의 포뇨를 참 좋아하는데 그건 이 양반이 '해탈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고해를 벗어나 해탈한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세계랄까요. 포뇨를 만들기 전에 선생이 1년 정도 쉬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붓다가 6년의 고행으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 마을 처녀가 준 우유와 죽을 마시고 회복한 다음에야 보리수 밑에서 열반에 들었다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저 못지 않은 광팬들인 동생 내외가 포뇨를 미야자키 선생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 있겠지요. 좀 광오한 이야기지만 선생의 고통에 공감한 사람은 포뇨를 걸작으로 여길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망작으로 여길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탈한 양반이 후계자 문제로, 특히 아들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은 살아 있는 한 고해로구나,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살 수 밖에 없구나 생각에 씁쓸한 미소만 짓게 되네요. ^^

마지막으로, 나우시카 7권 전체를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할 수도 없겠지만 하지 맙시다. 이미 할 이야기를 다 한 양반에게 뭘 더 바랍니까.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은 아름답게 남겨야지요. 이제 와서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되서 꿈도 희망도 다 밟아버리는 나우시카를 애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까? 그건 어른들만의 비밀로 남겨 놔야지요.



트위터위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