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준으로 동물을 판단하는 게 정당할까 - 늑대아이 2번째 감상 후 by 함부르거


지난번 '늑대아이 보고 왔습니다'에 이어 늑대아이를 두번째 보고 든 생각을 남깁니다. 이번엔 혼자 본 게 아니라 같이 봤어요. 8:00 조조로... ^^;;;;

일단 감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내용을 알고 봐서 그런지 오히려 더 감정적으로 공감해버린 느낌이 들어요. 역시 좋은 영화는 두번 세번 봐도 감동이 있습니다. 마지막 스탭롤 올라갈 때는 눈물이 줄줄줄 흘러 버렸네요. 처음에는 찔끔 하는 정도였는데 말이죠.

암튼 영화 속 아메의 선택에 대해 불만이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인간의 관점으론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게 과연 동물이 되기로 선택한 아메한테 정당한 평가인지는 의문이 있지요.

아메가 살기로 선택한 세계는 야생의 세계입니다. 그 속에서 육식동물로 자기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게 아메의 생각이죠. 인간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제가 볼 때 아메는 그 역할이 인간으로서 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엔 상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육식동물이 없이 초식동물만 있는 생태계는 어떻게 돌아갈까요? 오손도손 잘 살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적당한 대형 육식동물이 없는 생태계는 초식동물의 무한 번식으로 금방 황폐화 됩니다. 포식자가 없는 곳에 토끼를 풀어 놨다가 생태계가 완전 파괴된 호주의 토끼전쟁 같은 경우야 외래종의 피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애리조나 카이바브 고원에서는 늑대와 퓨마를 없앴더니 너무 늘어난 사슴 때문에 고원이 황폐화 되고 사슴무리도 질병과 굶주림으로 마구 죽어나갔죠. 곰과 호랑이의 씨가 마른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멧돼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죠.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몽골인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늑대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늑대가 가축을 물어 가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죠. 그 이유는 첫째, 늑대가 물어가는 가축은 대체로 병든 가축입니다. 둘째, 늑대가 물어가는 숫자는 전체에 비하면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늑대는 가축 무리에서 병들고 약한 가축만 잡아가서 전체적으로는 가축 무리를 더 튼튼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육식동물과 공진화를 이룩한 초식동물들은 엄청난 능력자들입니다. 초식동물들이 육식동물을 이기는 수단은 대체로 두가지입니다. 첫째 엄청난 번식력, 둘째는 신체능력이죠. 유전자를 남기는데 성공하고 있는 초식동물들은 새끼를 엄청 많이 낳을 수 있거나, 달리기, 도약, 방향전환 등등 육식동물의 공격을 피할 수단을 갖고 있죠. 쥐와 같은 소동물들은 첫째 수단에 특화된 것들이고 하마, 코끼리, 아프리카 물소 같은 동물들은 둘째 방향으로 극단적인 경우죠. 대체로는 둘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에 있습니다만.

암튼 육식동물이 없는 초식동물은 무한정 늘어나서 자기들이 사는 생태계도 파괴합니다. 아니면 도도새처럼 육식동물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동물은 환경변화에 너무나 취약해지죠.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 먹어 숫자를 제한함으로써 식물을 지키고, 초식동물들은 보다 강하고 보다 빠른 자손만 남기므로써 생태계의 균형이 맞고 있는 거죠.

육식동물이 사냥을 하는 것은 매우 쉽지 않습니다. 단체로 사냥을 하는 늑대의 성공률은 대체로 20% 정도이고, 다른 육식동물들도 10~20% 정도 밖에 안됩니다. 이렇게 사냥이 어렵다면 육식동물들의 목표는 뭐가 될까요? 약한 개체, 즉 병들거나 새끼이거나 하죠. 그래도 20%라는 겁니다. 육식동물들은 사실 사냥에 성공한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항상 굶주리는 불쌍한 아이들이예요. 조금만 뒤져 보시면 배고픔에 못이겨 기린 성체를 공격했다 뒷발질에 아작이 나는 사자라든가, 멋지게 늑대를 따돌리는 토끼 따위의 영상을 얼마든 찾을 수 있습니다.

로오나 님은 아메가 권력욕에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셨지만 전 동의하지 못합니다. 아메는 앉아 있기만 해도 먹을 것이 꼬박꼬박 나오는 집을 나와서, 춥고 배고프고 외로움에 떨면서 살아야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찌 보면 희생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는 인간의 지식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깨닫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 보면서 저도 '저 불효자 녀석'하고 불끈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안들면 사람이 아니죠. 그런데 더이상 사람이 아닌 아메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거의 모든 육식동물은, 특히 숫놈들은 다 자라면 부모를 떠납니다. 사자나 늑대 같이 무리사냥을 하는 일부 종이 아니면 대부분 그래요. 왜 그러냐면 사냥영역은 한정되어 있으니 입이 늘어나면 모두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죠. 떠나는게 자식에게나 어미에게나 둘 다 사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짐승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메는 자기 영역을 찾아 떠난 거죠. 자연스런 일입니다. 더 이상 인간세상에 미련도 없고... 아들이 어머니 고생 모르는 거야 인간도 별 다를 거 없잖아요? 

이렇게 된 데는 하나의 선택도 있습니다. 어머니로서 아이들이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할 수도 있건만 - 실제 그런 어머니들 많잖아요? 검사 되라고 초등학생 때부터 닥달하는 어머니라든가. - 그녀는 자식들이 늑대와 인간 중에 하나를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의 여지를 줬습니다. 아메가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꾸중하지도 않고, 여우를 스승 삼아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줬죠. 그러기에 자식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 겁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운 겁니다. 아이들이 무슨 길을 택하든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비록 자신은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며 슬퍼할 지언정...... (아 또 눈물날라 그러네.) 

사실 인간은 중학생 정도 나이 되면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게 맞아요. 그게 자연의 이치지요. 공자님도 15세 이립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살 지언정 자기 생각이 또렷해지고 자기 길을 정하는 시기가 그 나이 아닙니까. 영화에서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서 아쉬움을 느낀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게 부모 마음입니다. 하지만 자식의 독립을 인정하고 떠나 보내는 것도 부모 마음이죠. 우리 나라는 그걸 인정 안하는 부모님들이 너무 많아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말이예요.


ps. 영화밸리로 보낼까 과학밸리로 보낼까 하다가 영화 밸리로 결정. 지난번 글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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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부르거의 이글루 : 설국열차 - 꼬리칸의 존재 이유 2013-08-02 17:00:25 #

    ...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남한과 북한, 여당과 야당, 남과 여... 팽팽하던 긴장관계가 어느 한 쪽으로 쏠릴 때 생태계는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예전에 제가 늑대아이 리뷰에 썼던 것과 같이 말이죠. 여담이지만 전 우리 나라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북한의 약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강력한 ... more

덧글

  • 에반 2012/09/25 15:57 #

    영화를 안 봤는데도 넘 술술 잘 읽히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ㅎㅎㅎ 좋은글 감사드랴용><
  • 함부르거 2012/09/25 16:33 #

    이왕이면 영화도 보심 좋구요. ^^;;; 아 저 영화사 관계자 아닙니다. ^^;;;
  • $$$$ 2012/09/25 20:16 # 삭제

    아 ㅅㅂ 결론은 딱 하나예요,
    유키가 남자한테 첫눈에 뻑가가지곤 상대한테 상처도 내고 자기도 가슴에 멍도 들고 하면서 연애질을 하듯이
    아메한테도 좀 빠른 시기에 여친이 생겼으면....
  • 함부르거 2012/09/25 23:48 #

    ㅎㅎㅎ 그럼 자기 아빠처럼 됐을지도.
  • $$$$ 2012/09/25 20:18 # 삭제

    아 존나..

    "꼭...!" "ㅡ잘 살아야 돼 ㅡ !!!!"

    할때 눙물이... 어흙
  • 유령 2012/09/25 20:56 #

    말씀하신 육식동물의 생태와 모성에 대한 부분은 [마당을 나온 암탉] 마지막 장면과 연결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감상 잘 읽었습니다.
  • 함부르거 2012/09/25 23:49 #

    졸문을 칭찬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봤는데 그걸 연결시켜 볼 생각은 못했네요. (먼산)
  • 나인테일 2012/09/25 21:55 #

    초식동물 개체수 감소가 목적이라면 아버지처럼 아르바이트(...) 늑대를 해도 되고 엽총 수렵이라는 훨씬 세련된 방법도 있지요. 늑대의 감으로 총을 쏴대면 산짐승 씨가 마르도록 잡을 수 있을텐데요;;

    어떻게 해도 현실성을 붙이기엔 쉽지 않죠;;;
  • 함부르거 2012/09/26 00:07 #

    현실성이라면 늑대인간이라는 데서부터 없죠. (^^;;;)

    개인적으로는 아메의 마음에 많이 공감하는 편입니다. 어머니한테서 완전히 독립하고 싶다던가, 내 멋대로 살고 싶다던가, 본능대로 살고 싶다던가 등등등. 그래서 이 포스팅을 쓴 것도 같구요. ^^;;;

    말씀하신 관점은 인간이 그래도 낫지 않냐는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인 만족감은 사람(늑대?)마다 다를 테니까요. 총으로 쉽게 쉽게 잡는 것보다, 배 쫄쫄 굶다가 죽어라 달려서 뜨거운 피맛을 보는 데 쾌감을 더 느낄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인간이면서도 인간사 귀찮다고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수도사들이나 일부러 불편하게 사는 아미쉬 같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지 좋을대로 하겠다는데 이유가 필요 없지요. ^^;;
  • 잠꾸러기 2012/09/25 22:02 #

    만화 중간에 맷돼지 때문에 농사가 망해버리는 동네주민들이 언급되죠. 그것과도 연결 지어볼수 있을듯...
    이 포스팅에 공감하며 한줄 남기고 갑니다.
  • 함부르거 2012/09/26 00:08 #

    감사합니다. 멧돼지는 일본에서도 골치더군요. 현실적으로는 늑대가 멧돼지 잡기는 쉽지 않습니다.
    곰이나 호랑이 레벨은 돼야 좀 해볼만 하죠.
  • 봉군 2012/09/26 08:09 #

    늑대임을 인정하였지만 또 한부분으로는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했다는거.... 전 좀 그렇게 봤거든요. 결국 아메는 늑대가 아닌 늑대인간인데 자신의 한 부분을 너무 부정한게 아닌가....뭐 유키는 인간을 선택했지만 자신이 늑대인 점이라는 것도 부정하려 들다가 고민하고 소헤이를 통해 자신이 또한 늑대인 면도 있음을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함부르거 2012/09/26 11:35 #

    자기 정체성의 다층적인 면을 인정 못하는 사람들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군인이자 아버지인데 집에서도 군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처럼 말예요. 또 알면서도 귀찮다 내지는 복잡한 게 싫어서 한쪽으로 올인하는 사람도 있죠. 대체로 남자들이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아메의 선택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 않나 합니다.
  • 봉군 2012/09/26 11:53 #

    음...그럴수도 있겠군요. 저는 딱 해외 동포 2세들의 정체성적인 면이 생각나더군요.
  • 1122 2012/09/26 11:46 # 삭제

    스포인가
  • 함부르거 2012/09/26 11:58 #

    헉... 이미 비슷한 리뷰라면 넘치고 넘쳐서요... -_-;;;
  • 카이린 2012/09/26 13:10 #

    가끔씩 엄마를 찾아오는 늑대 정도 였으면 큰 불만은 없습니다. 아메의 선택은 독립이라기보다는 엄마를 비롯한 인간세계와의 단절이라. 선택의 이유는 알지만 공감할 수 없는 게 바로 그 부분인 것 같아요.
  • 함부르거 2012/09/26 13:16 #

    이해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공감은 감정의 영역이니 공감 못하시는 분이 많은 건 어쩔 수 없겠죠.
    전 공감하는 편이라 아메를 좀 변호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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