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안다는 것 by 함부르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인간을 아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자신을 아는 것 아닐까 싶다. 나 자신에 대해서 그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 대단한 철학적 이야기는 아니고, 예를 들자면 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지능은 좋은 편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기분을 이해하는 지능은 높지 않다. 덕분에 사회 생활하면서 실수가 많은 편이고... 여러 가지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며 한가지만 파고 드는 것을 잘 못한다. 이것저것 잘 이해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는 어려운 성격이랄까. 쓸데 없는 고집은 없는 편이지만 내적인 신념은 요지부동이고. 그 외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들어서 깨닫고 있는 것들이다.

특히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 성격이란 점이 중요한데, 이런 점을 일찍 깨달았다면 유학 같은 것은 가지 않고 일찌감치부터 관료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관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이것저것 많이 주워 듣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내 적성과 성격을 잘못 판단하고 진로를 정해 왔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는 워낙 다방면으로 - 체육과 미술, 음악 빼고 - 이것저것 잘 했으니까 이런 것들이 드러나지 않았다. 적성검사 하면 모든 분야에서 100점이 나오곤 했으니. 부모님들은 아들이 뭘 하든 뛰어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진로는 네 뜻대로 정하고 공부만 잘해라'고 진로 문제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 했다. 성적과 태도는 신경쓰는데 어디로 관심을 유도하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나는 10년 가까이 잘 맞지 않는 분야에서 고생하다가 결국 늦은 나이에 공무원 생활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특정한 진로를 강요하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문제가 되는데 - 의사가 되라든지 - 나의 경우엔 오히려 그런 것이 너무 없어서 문제가 된 셈이다. 

아이에게 맞지 않는 진로를 강요하는 것도 그 아이의 재능과 적성을 망치는 일이지만 너무 방치하는 것도 안 좋은 일이다. 그럼 부모는 뭘 해야 할까? 

내 경우를 돌이켜 보건데 부모가 할 일은 아이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성격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진로를 스스로 정하게 하되 자신의 개성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진로에 관한 정보를 일찍부터 많이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아이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왜냐면 스스로 돌아보는 버릇은 나이 들기 전엔 붙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 주고 교육해도 자성하는 습관은 어릴 때는 절대로 안 든다. 젊은이는 미래를 보지 과거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이, 특히 가장 오랜 시간 붙어 있는 부모가 보고 판단한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 얼굴 모양을 알 수 없듯이 남이 말해주지 않으면 어린 나이 때는 자신에 대해 알기 어렵다.

물론 부모가 이야기한 모습- 이상형이라고 할까 -에 맞춰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원래 수학을 잘 못하는 아이인데 '넌 수학을 잘 할 수 있어'라고 계속 세뇌시킨 결과 잘하게 되는 것처럼. 수학공부 정도면 모르겠는데 천성과 전혀 딴판인 상을 아이에게 세뇌시켜 인생을 망가뜨리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지나친 긍정은 지나친 부정보다 안 좋을 수 있다. 부모가 정확한 관찰하고 판단해서, 공정한 마음으로 아이를 유도해야 한다.

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열심히 사는 부모님 만나서 부족한 것 없이 잘 자란 편이다. 너무 물질적인 면에서만 노력하시던 분들이라 정신적으로 많이 방황했지만 말이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보면서 느끼고 또 느끼는 건데, 좋은 부모 되기란 정말 어렵다. 어느 분이 '성직자 수행자보다 세상에서 자식 낳아서 기르는 사람들이 진짜 성인(聖人)'이라고 일갈했는데 백번 공감한다. 부모의 길은 수행의 길이고 봉사의 길이 아닐까. 수행자들의 세계보다 더 치열하고 더 힘든 일이다.



트위터위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