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전쟁이란 만화 by 함부르거

오오니시 케이이치(大西巷一)소녀전쟁(乙女戦爭ディーヴチー·ヴァールカ) 이란 만화가 있습니다. 정발은 안되고 어둠의 루트로 돌고 있는데요.

무려 후스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얀 지슈카의 부대에 들어간 소녀 병사의 이야기죠.

후스 전쟁이라고 하면 우리 나라에선 어지간히 역덕이 아니면 이름도 알기 힘든 전쟁인데 이런 게 다 나온다는 게 진짜 좀 무섭습니다. 일본이란 나라의 인문학의 깊이를 말해주는 거랄까요. 우리 나라에선 어떤 분야든 조금만 파고 들면 자료가 없어서 외국 원서를 구하든가 해야 하는데 일본에선 왠만한 분야는 다 책이 나와 있으니 말이죠. 우리 나라에선 이런 거 시도하다간 망작이 되기 십상입니다. 우리 나라 작가들이 재능이 떨어진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사회가 깔고 있는 베이스가 너무나 차이가 나요. 자료부터 시작해서 이런 걸 수요로 할 수 있는 문화적인 깊이까지 말이죠.

이 작품이 대단한 게, 인물 그림은 뭔가 좀 비례가 안 맞아 보이는 옛날 소녀만화 풍이지만 의상이나 갑주, 무기 같은 것은 고증이 잘 되어 있습니다. 후스 전쟁이 가지던 사회적 의미라든가 무지하고 무력한 민초를 병사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든가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는 이야기인데, 어디 작가가 체코까지 가서 자료를 수집했겠어요? 다 일본에 이런 종류의 서적,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물론 잘 팔리면 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

우리 나라에선 네이버 웹툰 칼부림 같은 작품에서나 이제야 시도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것도 그나마 자료를 구하기 쉬운 조선시대 이야기죠. 

이게 만화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래요. 드라마도 고려 이전 시대로 가면 고증은 판타지로 날아가고 서양 쪽 이야기는 아예 손도 못 대죠. 일본에선 자국 뿐 아니라 서양 쪽까지도 파고 또 파서 이젠 만화로 후스 전쟁까지 나오는 판인데, 우리 나라는 아직도 서점가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같은 게 권위 있는 교양서인 판이니 이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일본 쪽 교양서도 잘 보면 좀 흥미 위주인 면도 있고 유행따라 왔다갔다 합니다만, 가장 기본이 되는 학계의 깊이 자체가 다르다는 게 제 솔직한 느낌입니다. 학계 쪽 베이스가 탄탄하니까 유행따라 뜨는 콘텐츠를 언제든 생산해 낼 수 있는 거죠. 그게 역사가 됐든 철학이 됐든 말입니다. 라이트노벨만 봐도 일본 쪽 작품들은 바탕이 되는 역사, 철학, 종교, 경제 등등 인문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다릅니다. 마오유우나 늑대와 향신료 같은 작품이 그냥 나오는 게 아녜요.  

우리 나라 작가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우리 나라의 이른 바 작가라는 사람들, 그러니까 소설가, 만화가, 드라마 작가, 시나리오 라이터 등등 하는 사람들 중에 딱히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사람은 정말 몇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분야가 있는 작가도 드물구요. 문피아나 조아라 같은 곳에 보면 글  재미 있게 쓰는 아마추어 작가는 상당히 많지만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깊이 있게 풀어내는 사람은 없죠. 그냥 비스무리한 소재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낼 뿐. 그게 나쁜 건 아니고 그런 수요도 많지만 그런 것만 있는 건 상당히 곤란합니다.

지금 한류니 뭐니 해도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너무 약해서 이게 얼마나 갈까, 가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방송의 영향으로 한류가 대단한 것처럼 착각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란 건 누구나 다 알잖아요? 강남스타일처럼 어쩌다 하나 뜨면 전세계를 잡아먹은 것처럼 난리를 치지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가지진 못하죠. 우리 나라의 문화적 영향력은 일본 망가만치도 못한 게 사실 아닙니까. 온라인 게임 말고 대한민국에 전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콘텐츠가 뭐가 있습니까.

이게 그냥 인구가 적어서 뿐일 수도 있어요. 수요가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잘 팔리는 분야만 나오고 나머지는 클 수가 없는 거죠. 뭔가 팔리는 인문학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크기가 우리의 몇 배에 달하는 나라들이니 그런 걸로 위안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어떤 국가의 문화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가 쌓아 온 학문의 깊이, 특히 인문학의 깊이가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요즘 인문학 붐이니 뭐니 해도 우리 주변국에선 이미 다 베이스로 깔고 있는 교양 수준을 우리는 겨우 따라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죠.

우리가 그렇게 깔보는 중국만 해도 역사 드라마 같은 것은 이미 우리를 넘어선 지 오래고 다른 분야도 대 약진 중입니다. 얘네들이 그 시장의 크기와 단단히 쌓인 인문학적 내공을 결합시켰을 때 어떤 결과로 세상에 나올 지 두렵지 않습니까? 일본이 쌓아 놓은 수준도 아직 까마득해 보이는데 중국은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오고 있습니다. 단지 경제력, 군사력에서만 밀리는 게 아니라 문화수준에서도 완전히 밀려버릴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만화 이야기 하다가 한참 삼천포로 빠져 버렸습니다만 저는 인문학이 모든 창작 컨텐츠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뿌리가 없이는 절대 좋은 창작물이 나올 수 없어요. 만화 하나만 봐도 드러나는 일본과 우리 나라의 격차와, 미친 듯이 쫓아오는 중국을 생각하니 참 우울해집니다. 

단지 돈 좀 번다고 멋진 나라 좋은 나라가 되는 게 아녜요. 우리가 세계에 기여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생각하면 참 답이 없죠. 이런 이야기 하면 또 사업할 거리 찾았다고 천박한 일이나 벌이고 있는 정치인과 공무원들 생각하면 더더욱 답이 없구요. 그러면서도 잘 크고 있는 문화는 또 죽이는 게... 답답합니다. 

우울한 이야기 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ps. 잔인한 내용에 내성 없으신 분들은 찾아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이것이 중세 전쟁의 참혹한 실상이다.' 수준이라…

덧글

  • 지오-나디르 2014/01/21 14:43 #

    고어물로 유명한 dance macabre 작가의 신작이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함부르거 2014/01/21 17:20 #

    다른 작품은 잘 모르고 이 작품만 봤습니다. 원래 고어물 작가라...어쩐지 묘사가 리얼하더라니.
  • Lloyd 2014/01/21 16:39 #

    문화와 관련된 산업이 자랑스레 떠들어대는 경제규모에 비해 굉장히 작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들 일색인 가요, 방송, 드라마 등 소위 삐까번쩍한 대중문화 말고 글쓴분께서 말씀하신 '인문학적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쪽이요...
    좀 뜬금없는 얘기지만 10년 전 쯤엔 자국 역사를 우스꽝스럽게 각색하고, 또 그게 잘 팔리는 일본 서브컬쳐 상품들이 마냥 웃기게만 보였는데, 덕질 오래하다보니 우리가 너무 고지식하고 격식에 치우쳐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 함부르거 2014/01/21 17:20 #

    패러디하고 우스개 소리로 삼는다는 이야기는 작가가 거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수용하는 사람들도 잘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요.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우리 나라에서 역사적인 내용에 대해 패러디나 희화화가 적은 이유는 보수적인 윤리관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처럼 잘 알려진 사람은 오히려 코미디로 만들기 쉽지만 척준경 같이 아는 사람만 아는 캐릭터는 희화했다간 난리 나겠죠? ㅎㅎ
  • NRPU 2014/01/21 17:42 #

    IMF이후로 한국인의 인식은 단 하나죠.
    돈이 되느냐,안되느냐.
    참 앞날이 걱정입니다.
  • 함부르거 2014/01/21 20:04 #

    이전부터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IMF가 더욱 강화시켰죠.
  • Niveus 2014/01/21 21:33 #

    인구에 비해서도 턱없이 작은편입니다.
    사실 한국의 인구규모는 그렇게까지 작다고 폄하할 수준은 아닌데말이죠. -_-a
  • 함부르거 2014/01/21 21:39 #

    뭔가 사업 할라치면 '인구가 적다, 시장이 작다.' 이게 단골메뉴이니...

    대한민국의 부는 전부 사교육과 부동산에 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_-;;;
  • Niveus 2014/01/21 21:58 #

    정확히 따지자면 '인구 대비 시장이 터무니없이 작은데 그 작은것마저 몇몇 메이져가 다 쳐먹는다' 죠.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한국은 X같은 시장인게 보통 하나가 유행을 타면 일단 우르르르 몰려가서 거기 부가 다 집중되고 이 패턴의 연속이니말입니다.
    마이너 시장이 육성하고 뜬금포 성공이 있기 힘든 구조죠. (후자는 그나마 시류를 잘 타면 가끔 있긴한데;;)
  • 함부르거 2014/01/22 02:45 #

    교육과 사회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네요. 모두가 비슷하길 강요하니…
  • 2014/01/22 07: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22 10: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1/22 10: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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