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 한국인의 효자 컴플렉스에 직격 by 함부르거

이제 극장에서 내려간다길래 또 봤습니다... 지난번에 출장 나가서 빈 시간 때우기로 봤던 거까지 하면 이걸로 6번째입니다. 내가 미쳤지... -_-;;;

근데 이 영화는 또 볼 때마다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분 말씀대로 까도까도 새로운 게 나오는 양파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다회 관람자들이 무더기로 나오고 천만을 돌파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 든 생각은 '겨울왕국은 한국인들의 효자 컴플렉스에 직격했다.'입니다.

이 세상에서 효도라는 것의 무게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민족은 한국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선시대 500년도 모자라서 현대에 와서까지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효자 효부상 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이 나라가 유일하지 않나요? 유교의 효라는 관념을 통치수단으로 끄집어 낸 것은 중국인들이지만 걔네들은 그냥 수단으로서만 써먹은 느낌이 강하고, 그나마 현대에 와서는 폐기처분 되어 버렸죠. 문화혁명이 결정타였고. 그에 비해서 효도를 생활화, 이념화 해서 뼈속까지 새겨 넣으며 실천한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닌가 합니다.

부모를 떠나보낸 상주들이 보통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다' 입니다. 효도 할 거 다 한 사람도 이래요. 사실 저도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엔 이 말을 이해 못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저도 그런 기분이 되더군요. 이성적으로 보면 돌아가실 때 되서, 병이 나서 돌아가시게 되서 미안하게 여길 일이 아닌데도 한국인들은 죄의식을 느낍니다. '부모의 은덕은 하늘 같아서 아무리 해도 자식은 갚을 길이 없다'란 효 사상이 심어준 관념이 체질화 된 결과가 아닌가,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아버지 생각하니까 또 눈물나네. ㅠㅠ

한국사람들은 효자 효녀 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너무나 잘 알아요. 괜히 상 주는 게 아녜요.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에 상 주는 거예요. 오죽하면 '가난뱅이한텐 시집가도 효자한텐 시집가지 마라'는 말까지 있어요? 초인적인 인내심과 자기희생을 통해서 완성되는 게 효도의 길이예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기는 그렇게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또 부모들이 자식에게 미안한 감정을 무지무지 느끼는 것도 한국사람들이예요. 한국 부모님들 보면 항상 '자식한테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가 레파토리예요. 전 자식이 없어서 이 기분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자식들은 부모님이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는 걸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또 효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지요. 부모들은 충분히 해준 게 없다고 미안하지요. 자식과 부모들이 서로서로 미안하고 안쓰러운 관계인 게 보통 한국사람들의 정서가 아닌가 싶어요. 한국 사람들은 다들 서로에게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가요.

근데 겨울왕국에서는 엘사 안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세요. 그것도 바다에서 횡사해요.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생각이 떠올라요. '부모님들은 엘사 같은 자식 두고 걱정되서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부모님 임종은 커녕 장례식도 못 치르는 엘사는 얼마나 죄송하고 한스러울까.' '언니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야 하는 안나는 얼마나 부담될까' 기타 등등등. 한국인들은 이걸 보면서 자신의 마음의 빚을 떠올립니다.

사실 부모님이 등장하는 첫 부분부터 한국인들을 건드려요. 아무리 코딱지만한 나라라지만, 무려 국왕 부부가 한밤중에 아픈 자식을 끌어 안고 헐레벌떡 의사 선생님 - 돌팔이 트롤이란 게 함정이지만 - 찾아가는 장면 말이죠. 다들 자라면서, 자식을 키우면서 어딘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지 않습니까? ^^;;; 여기서부터 한국 사람들은 빠져드는 거죠. '아 ㅅㅂ 자식새끼 기르는 거 힘들지 응응.' 하면서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항상 조심하고 죄의식에 빠져 사는 엘사의 모습은 한국 사람들의 이런 기저의식을 정통으로 건드립니다. 아버지 초상화를 보면서 결심을 다지지만 한편으론 이게 엄청난 부담감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몸으로 느끼는 게 한국인이예요. 부모님께 누를 안끼치는 효녀가 되야 한다는 거, 영화에서 직접 말해주지 않는 거지만 한국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요.

사실 한국 사람 건드리는 건 간단해요. 부모님 건드리면 되요. 원수를 만들려면 부모 욕을 하면 되고, 울리려면 부모님 가지고 노래 부르고 글 쓰면 되요. 부모님이란 존재는 한국인들에게 하늘같은 은혜이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며 무거운 짐이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런 존재인 겁니다.

즉, 이 영화는 부모님과 엘사의 관계를 초반에 보여주는 것만으로 한국인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던 겁니다. 

한국인의 기저의식을 무의식중에 일깨운 거죠. 세련된 음악과 영상으로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실로 극적인 반전을 던져 주죠. 엘사가 다 조까! 하면서 뛰쳐 나가요. 빵 뚫리는 거죠. 온몸에 전기가 쫙 흐르는 거예요. ㅅㅂ 존나게 답답한데, 그러면서도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거 너무너무너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데, 그런데 확 뛰쳐 나가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나가요. 사실 해결 안된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말이죠. 그렇게 신나게 한번 저질러 버리고 싶어요. 그게 한국인이예요. 아 ㅅㅂ 글 쓰면서도 눈물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ㅅㅂ 나이 처먹을대로 처먹은 아저씨가 이러고 있어요. 이건 그러니까 한풀이예요 한풀이. 이 영화 몇십번씩 보는 사람들이 그래서 나와요.

디즈니 본사 친구들은 이 영화가 왜 한국에서 천만 찍는 메가히트를 쳤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으론 이해 못해요. 서양 사람들하곤 천만광년 거리가 있는 감정이예요. 이건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잡은 거랑 똑같아요. 앞으로 어떤 디즈니 영화도 이렇게 히트치긴 힘들 겁니다. 말로 설명이 되야 말이죠. 

음악? 영상? 시나리오? 캐릭터? 다 부가적이예요. 한국인들의 하트에 직격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은 다르게 보실 지도 모르겠지만 전 이렇게 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다 쓰고 보니 겨울왕국 포스팅만 5번째네요. 기록입니다 기록. 참 정말 나 자신도 왜 이러는 건지...

덧글

  • 미고자라드 2014/03/05 14:22 #

    국왕 부부가 애들 데리고 트롤들한테 찾아가는,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이 단순히 한국인들에 국한되는건 아닌거 같네요. 그러니 해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 그런 모습이 담겨있는 것일테고, 또 한국인들만 빠져들지도 않겠죠.

    그리고 엘사의 죄의식은 아무리 봐도 부모의 사망이 아니라 안나한테 헤드샷 날린걸로 보이는데요..
  • 함부르거 2014/03/05 14:28 #

    뭐 그냥 제 느낌입니다.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읽힐 수 있는 게 이 영화인지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 오오 2014/03/05 15:56 #

    색다른 시각, 좋네요.
  • 함부르거 2014/03/05 15:59 #

    네 그냥 이렇게 본다는 거죠. 다른 이유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익명 2014/03/05 16:18 # 삭제

    과연.... 반대로 안나 인기가 바닥을 치는 것도 그런면으로 해석할수도 있겠네요.
  • 함부르거 2014/03/05 16:22 #

    우리 나라에선 엘사한테 뭍혀서 그렇지 안나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요. ㅎㅎ
  • felidae 2014/03/05 20:19 #

    단지 재밌다는 것만으로 이런 열풍이 설명되지 않죠. 렛잇고 노래가 좋아서라면 그것만 다운받아서 들어도 되는 것을 자꾸 영화관에 가게 만드는 건 '겨울왕국'이 많은 한국인에게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을 안겨주어서일 거에요. 싱어롱 버전이 나왔다는데 토요일날 마지막으로 노래 한 번 불러보고 이제 정말 이 작품과 이별해야겠네요 ㅠㅠ
  • 함부르거 2014/03/05 21:13 #

    네 왜 한국에서 이렇게 열풍인지 보면서 생각하다가 제 나름의 이유를 찾아 봤습니다.
  • Serendipity 2014/03/21 14:06 #

    전 한국에서 왜 그리 열광을 하나 싶어서 봤는데

    도대체 이게 왜??????????? 그냥 디즈닌데?????? 라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구요
    아무런 감흥도 없고 그냥 호화로운 어린이 애니메이션 이였습니다 (...)
    다시 한 번 봐볼까 봐요.
  • 함부르거 2014/03/21 14:51 #

    그러니까 보고 또 보면 새로운 게 보여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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