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독일-미국전을 조금 보다가 일찍 잔 게 너무 억울하다는 불평을 좀 하겠습니다. -,.-;;;
결과적으로는 김신욱 원톱이 적어도 박주영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는 것, 김승규도 정성룡보다는 훨씬 좋은 선택이라는 점을 증명한 경기였습니다. 보이지도 않던 박주영보다는 김신욱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놓고, 벨기에 수비들을 괴롭혔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김승규는 한 골 먹긴 했지만 안정감 있는 수비를 보여줬구요.
허나 김신욱을 쓰면 손흥민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경기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지 잘 몰랐는데 둘이 같은 그라운드 위에 있는 걸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손흥민은 외곽에서 가운데로 잘라 들어가는 움직임이 좋은 선수고 김신욱은 중앙에서 버티면서 떨궈주거나 자기가 해결하는데 능한 선수인데, 이 둘의 동선이 겹칩니다. 전반전에 손흥민의 움직임이 적은 이유가 되었죠. 김신욱이 수비를 잔뜩 몰아 놓으면 손흥민이 거기에 정면돌진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수비수들을 흩어 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수비를 양 측면으로 흔들고 뒤로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이 좋은 이근호가 투입되자 손흥민도 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한국팀의 밸런스가 가장 좋았던 시점이 이근호가 투입된 후반 시작 부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벨기에가 한명 퇴장 당한 상태에서 손흥민-김신욱-이근호-이청용으로 이어지는 4각 공격편대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사실 벨기에가 전반전에 강하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비등한 경기라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만약 벨기에가 알제리처럼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강하게 나왔다면 그 때와 비슷한 경기양상이 되었을 겁니다. 수비가 너무 빈약해서 후반으로 갈 수록 불안을 노출했습니다.
홍 감독의 교체 카드는 이근호 빼면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김신욱 대신 들어간 김보경, 손흥민 대신 들어간 지동원 모두 원래 있던 선수들이 더 위협적이고 효과적인 플레이를 했습니다.
손흥민은 너무 서두르고 조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패배가 아닌 승리를, 그것도 다득점 승리를 위해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욕심, 그로 인한 흥분과 긴장이 그렇게 만든 듯 합니다. 어린 나이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죠. 이 선수가 어디 패배와 실패에 익숙한 선수겠습니까. 또 그래서도 안되구요. 다른 선수들이 패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싸웠다면 손흥민은 승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이 마음, 소중합니다. 부디 다치지 말고 대선수로 성장하길 빌겠습니다.
기성용은 그 시도 때도 없는 어설프고 위험한 태클, 낮은 수비가담, 느린 템포, 볼 돌리는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국대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장점도 많은 선수니 부디 스스로 깨닫고 나쁜 버릇을 고치길 바랍니다. 아직 젊은 선수입니다. 혹시 모르죠? 이 친구가 베컴이나 긱스(인간성 말고 축구실력만) 같이 될 지.
이청용은 움직임은 부산했는데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골문 앞에서 볼 돌리는 버릇은 여전하구요.
공격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역습이 전혀 없었다, 있어도 너무 느려서 조금도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들은 역습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위에 말한 기성용의 문제와 같이, 볼을 뺐은 다음 빠르게 연결하는 모습이 어떤 선수에게도 없었습니다. 훈련이 안 되어 있었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손흥민이라는 막강한 역습자원을 두고 그런 전술구상도 연습도 없었다는 건 명백한 무지와 태만의 결과물입니다.
수비와 체력 문제는 지적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전반전에 벨기에가 강하게 나오지 않고, 또 한명 퇴장 당해서 그렇지 상대의 공격을 예측도 못하고 제대로 저지하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10명이 뛴 팀보다 체력이 달려서 후반으로 갈 수록 더 고전을 한 걸까요? 선수의 문제인지 훈련의 문제인지 무슨 문제인지는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골 먹는 장면은 한심함 그 자체였습니다. 일단 슈팅까지 가게 만든 것부터가 문제고, 리바운드 된 걸 잡을 때까지도 수비수들이 달라붙지를 않았습니다. 체력, 조직력, 정신력, 기술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번 대회, 한국 축구는 제대로 망했습니다.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르죠. 완전히 망해 봐야 새 판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감독 선임방식, 선수선발, 대표팀 운영 방식, 무엇보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는 일까지 모든 부분에서 철저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표팀의 가장 대표적인 악습인 실패한 감독 자르기를 그만 둬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HMB가 임기를 온전히 마치길 바랍니다. 어차피 이 사람 자르면 뽑을 사람도 없을 겁니다. 혹시 또 HMB가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갱생하는 경우 있을 지 모르니 말이죠. 인터뷰 하는 거 보면 아직도 정신 못차린 거 같긴 합니다만.
이영표의 말이 딱 맞습니다. 월드컵은 경험하기 위한 곳이 아닌 증명하는 자리이고 한국팀은 그 처절한 무능력을 증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축구의 미래는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박주영은 그 이름 석자도 더 이상 꼴 보기 싫군요. 이대로 사라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_-;;;
덧글
전반부터 뛰어다녀서 체력이 떨어지는게 눈에 보이니 안 바꿔줄 수는 없었을꺼라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선수들 컨디션이 다 안좋더군요-_-;;
대표팀은 한 나라의 축구 역량을 정제한 엑기스와 같습니다. 대표팀의 실패는 그 나라 축구의 실패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대표팀이 하도 지리멸렬하게 망해서 저도 모르게 이런 표현이 나온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