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vs 멕시코 by 함부르거

멕시코에겐 통한의 경기가 되었습니다. 88분을 이겨 놓고도 7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집념 어린 네덜란드의 공격이 멕시코의 방패를 뚫은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기 역시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린 명승부였습니다.

전반전엔 서로가 유니폼만 바꿔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경기였습니다. 똑같은 포메이션으로 똑같이 수비 위주의 경기 운영을 했죠. 양 팀 모두 서로의 창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잘 알고 있었고, 전반 내내 탐색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전반 초반 데 용이 부상으로 인디와 교체되면서 네덜란드 포메이션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레프트 윙백 자리에 있던 블린트가 중앙미드필더로 들어왔고 인디가 블린트 대신 윙백으로 들어갔죠. 블린트가 여러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워낙 재능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교체였습니다만, 네덜란드 미드필드의 핵심인 데 용의 자리가 제대로 메꿔질 지는 불안감이 있는 교체였습니다.

전반전이 지루하게 느껴질 사람도 많았겠지만, 저에겐 오히려 전반전이 더 흥미로왔습니다. 서로 라인을 내린 상태에서 수비 위주로 경기하는 가운데 그 대형을 누가 먼저 뚫을 것인가 하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은 선수들에게 극한의 집중력과 기술적 한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멕시코 쪽이 좀 더 가깝게 내 놓았습니다. 전반에 기록한 멕시코의 슈팅은 네덜란드보다 많았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좋았습니다. 전반전을 보면서 멕시코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제의 해법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터져 나왔습니다. 도스 산토스가 3명의 수비수 틈바구니에서 30m짜리 중거리 슛을 날렸고 정확히 구석으로 꽂히는 공에 경기 내내 선방하던 실러선 골키퍼도 손 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데 용과 블린트의 미드필드 수비력의 차이가 만든 골이었습니다. 미드필드에서 도스 산토스를 미리 차단했어야 하는데 못한 거죠. 근처에 있긴 했지만 슈팅을 막진 못했습니다. 정상급 레벨에선 실로 미세한 차이가 결정적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 골입니다. 또 도스 산토스의 슈팅이 워낙에 훌륭하긴 했습니다.

골이 들어간 다음의 전개는 네덜란드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백, 아니 5백에서 4백으로 전환하고 전반 비교적 수비적인 윙백 임무를 맡던 카윗도 공격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벤의 후방침투도 활발해지기 시작했죠. 경기 도중에 포메이션을 바꾸고, 그것을 완벽히 수행했다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포메이션 변환을 준비하고 지시할 수 있는 감독, 그리고 그걸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선수들은 네덜란드 축구 문화가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오초아 골키퍼의 미친 듯한 선방이 잇따라 나오면서 시간은 흘러 갔습니다. 다만 더운 날씨가 멕시코의 발목을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쿨링타임이 중간에 있었지만 선수들의 소모를 막기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네요. 원래 주도권을 가진 공격자보다 피동적으로 따라가는 수비가 더 힘들기 마련입니다. 네덜란드는 점유율에서 우위를 보이면서 멕시코 수비진을 소모시키고 있었고, 멕시코 팀은 발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후반 42분, 스네이더의 동점골이 터집니다. 그의 슈팅 장면에서 달라붙은 멕시코 선수가 없었다는 건 그만큼 지쳐 있었다라고 밖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동점골 이후 경기는 네덜란드로 넘어옵니다. 스코어는 1:1이었지만 그동안 멕시코 팀을 지탱해 왔던 긴장감이 풀리는 것이 화면에서도 보일 정도였습니다. 

인저리 타임에 나온 마르케스의 반칙은 로벤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고, 체력과 집중력이 바닥난 멕시코 수비진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경기 내내 좋은 수비를 보여주던 베테랑 마르케스는 로벤을 향해 발을 뻗었고 로벤이 걸렸습니다. 미세한 장면이지만 페널티킥을 주기엔 충분했습니다. 마르케스가 좀 더 체력이 남아 있었다면 뛰어가서 로벤을 막았겠죠. 그리고 훈텔라르가 PK를 집어 넣으면서 경기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멕시코는 왜 졌을까요? 네덜란드는 왜 이겼을까요? 미세한 차이라고 봅니다. 네덜란드의 반 할 감독이 조금이지만 에레라 감독보다 노련했습니다. 네덜란드 선수들의 축구지능이 멕시코보다 약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경기 후반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네덜란드의 체력이 멕시코보다 아주 약간 좋았습니다. 

멕시코가 1골 넣고 잠그려고 하기 보단 역습으로 네덜란드의 뒷공간을 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경기 후반에는 거의 일방적인 네덜란드의 공세였습니다. 그리고 원래 공세는 네덜란드의 장기입니다. 상대가 잘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더 힘든 법이죠. 에레라 감독의 승부수가 반할 감독의 것보다 조금 모자란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준 멕시코와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승자도 패자도 찬사를 받아 마땅한 경기였습니다. 

이번 대회는 지키려는 축구보다 골을 넣고 이기려는 축구가 더 유리한 것 같습니다. 브라질의 날씨와 무엇보다 뒤로 물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브라질 관중들이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믿고 보는 브라질산 축구입니다. ^^

덧글

  • 2014/06/30 11: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함부르거 2014/06/30 11:52 #

    확실히 네덜란드 체력이 더 좋았군요. 이동거리도 더 길고 휴식일도 짧았는데… 멕시코는 체격의 열세도 한 몫 한 거 같네요.
  • 2014/06/30 12: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다져써스피릿 2014/06/30 12:16 #

    전반전에는 멕시코가 움직임도 활발했던게 더위에 더 잘 적응하고 체력적으로도 우세한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속으로 "역시 멕시코도 더운 나라지"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데용이 일찍 떨어져나가서 그런 인상이 강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후반 되면서 체력의 우열이 뒤집히더군요. 결국 체력 아끼면서 지키기로 들어간 멕시코의 멸망............

    페널티에 대해서 말이 많다지만 멕시코가 한 골만 더 넣었더라면, 여럿 있던 기회 중 하나만 더 살렸더라면 괜찮았을텐데 말이죠. 쓰신대로 공격축구 만만세인 브라질 월드컵입니다ㅎ
  • 함부르거 2014/06/30 12:19 #

    전반에는 활발하다 후반에 잠잠해지면 체력이 약한 게 맞죠. 도스 산토스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넣은 게 패착 아닌가 싶어요. 그때부터 멕시코는 공격이 안되더군요.
  • 태구 2014/06/30 20:11 #

    슈나이더가 그 동안 골이 없어서 침체되어 보였는데 이 번에 제대로 한 건 했지요 :) 갑자기 Kuyt가 공격하기 시작해서 저도 정말 놀라면서 봤네요. (이 분은 로벤보다 체력이 더 왕이신듯..)
    링크하고 갑니다 ~~!
  • 함부르거 2014/06/30 21:48 #

    잘 되는 팀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활약하죠. 이번엔 스네이더 차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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