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서 가장 극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맞고 있는 학문 분야가 어디냐고 한다면 바로 고생물학 분야가 아닐까 싶다. 기존의 이론이 전부 쓰레기가 되는 대격변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들은 그런 변화를 감지하기가 힘들고, 여전히 기존 이미지는 강력하다. 그런 일반인들을 위해서 필요한 게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최근에 나온 공룡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뭐에 홀린 듯 눈을 뗄 수가 없다.

EBS에서 어제 일요일에 방영해 준 '진짜 공룡을 찾아서'(원제 Dinos : True color, NGCI)는 최근(이래도 2010년. 한참 지났지만)에 공룡의 깃털 색상을 어떻게 밝혀냈는지 그 과정을 보여 주는 매우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다. 공룡의 깃털이란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은 요즘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른다는 이야기니 꼭 이 다큐를 찾아서 보시기들 바란다.
이야기는 예일대 대학원생 야콥 빈터(Jakob Vinther, 덴마크인. 현재 브리스톨대학 조교수)가 오징어의 2억년전 화석에서 오늘날의 오징어 먹물과 똑같은 색소를 찾아낸 데서 시작한다. 전자현미경으로 화석 표면을 관찰했더니 색소 입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 친구는 여기서 한걸음을 더 나간다. 공룡의 깃털에서도 색소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깃털이 달린 공룡이야 90년대부터 활발하게 발굴이 되고 있었지만 - 오늘날엔 공룡에 깃털이 있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 색이 어땠는가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 색이란 것이 매우 중요한 게, 깃털에 어떤 색이 있었느냐는 동물의 모습 뿐 아니라 행동양태까지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화려한 색상의 털은 보온 같은 실용적인 목적 외에도 과시, 위협, 기만, 유혹 같은 여러 기능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 색이 화려한 동물은 그런 색을 인지할 수 있는 시력을 가졌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하여 이 친구가 이런 가능성을 제기하고 이런저런 전문가들을 모아서 중국에서 화석 샘플을 협조 받아 전자현미경으로 눈이 빠지도록 샅샅이 찾아낸 결과... 색소가 있었다!!! 그것도 빨간색, 검은색!!! 그것도 부위별로 다 달리!!!
진짜 이 장면에서 이 젊은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에 남을 연구 과제, 그것도 자기 이름이 첫머리에 거론될 연구 과제를 찾아낸 거 아닌가. 다큐 속에서도 선배 학자가 질투난다고 말하는데 십분 공감이 간다.
이런 연구 대상이 된 공룡은 안키오르니스 헉슬리(Anchiornis huxleyi)라고 하는데 복원된 그림은 아래와 같다.

<© 2010 National Geographic>
조그만 닭 같아서 귀엽다. 다큐에선 움직이는데 매우 귀여우니 작은 공룡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보시라.
암튼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룡이란 놈들은 차라리 조류에 더 가깝다는 게 정설이 되고 있다. 하는 짓도 조류랑 닮아서 알을 품고 있는 녀석도 있질 않나 말이다. 항온동물이 아닐까 하는 설도 유력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주라기 공원의 공룡 이미지는 싹 잊어야 할 판이다. 그것도 당시엔 최신 이론을 적극 채용한 것이었는데... -_-;;;
최근에 이렇게 고생물학 이론이 격변하고 있는 것은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화석 샘플이 대량으로 발굴되고 - 특히 중국에서. 요즘 중국은 안 끼는곳이 없지만 고생물학 분야에선 격변의 중심이다. - 분석 기술도 매우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 분석이나 행동실험을 통해서 파충류와 조류 사이에 새로운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특히 살짝 지나가면서 언급됐지만 파충류에도 깃털 관련 유전자가 잠재되어 있다고도 한다. 덕분에 밝혀진 사실은... 그 어마무시한 위용의 티라노 사우르스와 가장 가까운 현생동물은 바로 닭이라는 거다. 그래 닭. 여러분들이 지금 입에 물고 뜯고 있을지 모르는 그 치킨. orz
아직까지 티라노 사우르스 같은 대형 공룡들에게선 깃털이 발견되지 않는데 사실 이건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게, 대형 동물일 수록 체온이 높아서 털 같은 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코끼리만 봐도 새끼 때는 털이 부숭부숭 하다가 커가면서 없어지고, 타조도 병아리 때는 온 몸에 털이 덮여 있다가 크면서 빠져서 대머리가 된다. 대형 공룡도 어릴 때는 털이 있다가 크면서 없어진 게 아닐까 하는 게 고생물학자들의 설명이다.
나처럼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공룡이라고 하면 민숭민숭한 파충류 껍질에 커다란 몸을 질질 끌며 쿵쿵 이동하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데, 그런 거 이젠 다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한다. 어쩐지 약간 로망이 부족해지는 느낌인데 뭐 그런 거 따질 나이는 다 지났고... ^^;;; 어차피 아이들한테야 조류건 파충류건 둔중하건 날렵하건 공룡은 공룡이기 때문에 로망이다. 깃털 달리고 날아다니고 새처럼 짹짹대도 어린 아이들에겐 공룡은 영원한 로망일 거다. 그 점은 다행이다. ^^;;
덧글
과학이 발전하면서 뼈에 남은 흔적을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더군요.
말씀처럼 기존의 공룡 이미지는 싹~ 잊어야 할 판국인듯....
DVD로 발매해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너겟은 음... 이론적으론 그럴싸한데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
지금의 현행파충류들은... 블루오션에서 맘편하게 지낸 분들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지금 파충류의 조상으로 공룡을 보는 건 정확하지 않고 조류와 파충류의 공통조상으로 원시파충류를 구상하는 것이 정확할 듯 합니다.
더불어서 산으로뼈를 녹엿더니 뼈구성하는 단백질과 dna가 있더라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웟죠,
이젠 이 생각이 정설이 되가고 있으니 한 편으론 놀랍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원형그대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부리가 좀 긴가?
복원중인 황새들이 부리를 따딱거리며 목을 뒤로 젖히는 구애의 동작을 하는 걸 보면..... 느낌이 와요 쥬라기의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