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24시간 by 함부르거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는 약자가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가를 보면 즉각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명이 얼마나 훌륭한가는 그 문명에서 가장 잘 나가고 부유한 사람들을 볼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대접받는지를 봐야 한다는 말이죠.
 
젊을 때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고 로마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게 와장창 깨진 건 2003년 경 쾰른의 로마-게르만 박물관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보여 주는 로마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습니다. 부자들은 모자이크로 바닥 장식된 집에 사는 것도 모자라 무덤까지도 석상과 비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황금관에 묻히는 삶을 살고 있었죠. 아마 오늘날의 부자들도 이렇게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반면에 정말로 초라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로마 서민들의 생활상은 로마에 대한 환상을 깨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방조차 없어서 방바닥에 솥 하나 걸어 놓으면 그게 주방이요 식탁인, 혈거인에 가까운 집에서 로마 서민들은 다닥다닥 붙어 살았습니다. 중세의 파리가 길거리 오물로 유명하지만 로마도 다를 건 전혀 없었죠. 로마인들 중 침대 같은 가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 그나마 돌로 된 고정식 침상에서 잘 수 있는 사람들은 행운아죠. 노예들은 방도 없어서 복도에서 잤습니다. 이 박물관을 보면서 고대국가로서 로마가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야만성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암흑시대라고 알고 있는 중세의 농노들은 로마의 서민들보단 나은 삶을 살았습니다. 부실공사로 지어져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닭장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로마 서민들보다는요. 적어도 그들은 집주인이 월세 올린다고 집에서 쫓겨나 문자 그대로 길바닥에 온가족이 나앉는 일은 없었지 않았나요. 로마 서민들은 흔히 당하던 일입니다.
 
이 책은 그런 로마의 실제 생활상을 실감나게 보여 주면서 로마제국이란 국가를 환상이 아닌 실체로 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이 없을 정도로 원시적이고 비참하기까지 한 로마인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모든 면에서 얼마나 발전된 문명의 수혜를 받고 있는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중세적 질서가 자리잡게 된 하나의 원인도 이해가 되는 거지요.
 
아마 승자들의, 높은 사람들의 화려한 로마 역사만 알고 계신 분들에겐 이 책이 좀 버거울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로마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은 꼭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어떤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문명의 꼭대기부터 맨 밑바닥까지 다 봐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밑바닥을 훑고 있는 책입니다.

덧글

  • 진냥 2017/03/13 22:29 # 답글

    제가 진짜 좋아하는 책입니다!!! 단순히 미시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료에 기반하되 고대 로마인을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구석구석 재구성한 게 너무 매력적이에요.
  • 함부르거 2017/03/14 09:11 #

    아주 매력적이죠. 이 책을 읽으며 박물관에서 봤던 정경이 생생히 떠오르더군요.
  • 포스21 2017/03/13 22:30 # 답글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군요
  • 함부르거 2017/03/14 09:12 #

    아주 재밌습니다. 위에 분도 말씀하셨지만 단순한 미시사가 아니라 생활문화 전체를 생생하게 되살려 냈어요.
  • 홍차도둑 2017/03/14 00:43 # 답글

    이전부터 사려고 벼르다가 아직도 못한 책입니다. 구성 등에서 정말 사고 싶은데 말이죠 T_T
  • 함부르거 2017/03/14 09:12 #

    저도 중고 서점에서 보자마자 집어들었죠. ㅎㅎㅎ
  • 漁夫 2017/03/14 00:51 # 답글

    한국어 도서 중 세 개만 로마인의 '일상 생활'을 묘사한 책을 고르라면

    * 로마인의 일상 생활(La vie quotidiene); 제롬 카르코피노
    * Invisible Romans (로버트 냅)
    * 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

    맨 마지막 것은 한국 교수님께서 쓰셨는데 검색이 귀찮고 지금 집에도 없어서...

    로마 시내가 깨끗했을 리가 없죠. 그것만 해도 로마인 이야기가 뻥.
  • 함부르거 2017/03/14 09:10 #

    마지막 것은 '강대국의 비밀 - 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배은숙, 2008, 글항아리)' 맞죠? 가지고 있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후속작이랄까 '로마 검투사의 일생'도 재밌었습니다.
  • 눈바람 2017/03/14 01:18 # 답글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꼭 한번 봐야겠네요.
  • 함부르거 2017/03/14 09:13 #

    아주 좋은 책입니다. 이탈리안 특유의 유머감각도 풍부해서 읽다 보면 역사책이란 생각이 안들 수도 있어요.
  • RuBisCO 2017/03/14 02:56 # 답글

    로마 동인지(...)가 만들었던 환상이 깨졌을때 정말 충격이었죠. 현실이 이런 시궁창이었구나... 한게 참 그랬습니다.

    P.S 뻘글루스 서비스 개편 이후로 모바일 페이지에서 제대로 댓글이 안달리네요.
  • 함부르거 2017/03/14 09:14 #

    모바일 문제는 진짜 손 봐야겠어요.. ㅠ.ㅠ

    동인지 쓰는 아줌마는 곱게 자라서 그런지 지저분하고 더러운 거에는 학을 떼는 게, 이번에 집으로 쫓겨난 모 여사(...) 생각이 나네요. =_=;;;;
  • aLmin 2017/03/14 12:28 # 답글

    기독교가 괜히 퍼진 게 아니죠. 약자들의 희망이자 비참한 삶에 빛이 되어줬으니까요.

    그런데 모바일에서 덧글을 달려는데 계속 kimboss.pe.kr로 넘어가는데요, 게다가 없는 페이지구요.
  • 함부르거 2017/03/14 12:54 #

    로마 제국에서는 완전히 무시당하기만 하던 사람들을 기독교 전파 후엔 그나마 챙겨주는 척이라도 하게 됐으니까요.

    어째서 개인 도메인으로 옮겨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쳐 보겠습니다. ㅠㅠ

  • 위장효과 2017/03/14 19:31 # 답글

    모바일도 나름인 거 같은데, 위에 RubisCo님도 고생하신 듯 하지만 저도 모바일에서 함부르거님 얼음집 들어왔다 리플달려고만 하면 꼭 오류가 뜨더라고요. 저는 아예 Forbidden어쩌구 드랍질...그러고보니 다른 분 얼음집에서는 아예 엉뚱한 사이트 들어가서 도메인완료되었다는 뻘공지가 뜨고-컴에서는 잘만 되는데!!!-

    알베르토 안젤라 저 사람의 연작들이 참 재미있죠^^. 현재 국내 출간된 세 권 중 가운데-거 로마인의 애정사에 대한 거^^-는 눈치가 보이는 바람에 도저히 집에다가 사놓기가 뭐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봤고, 나머지 둘은 다 구입해서 열심히 읽는 중입니다-로마의 15000킬로미터인가 하여간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이집트 속주까지 로마 제국 전체를 여행하는 방식으로 로마제국의 모습을 잘 그려냄- 간혹가다보면 로마사라든가 아님 다른 일반지식쪽에서 오류가 눈에 뜨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모 일본인 동인녀할망구보다는 훨 낫습니다^^.

    제롬 카르코피노의 책은 다시 출판되도 될 거 같은데 요즘 한국 인문학 서적 시장이란 게 완전 시망인지라 기대도 안 합니다...OTL. 이런 시장꼴에서 어떻게 그렇게 인문학 서적들을 심지어 재간까지 하는지 까치 글방의 저력에 그저 감탄뿐...
  • 함부르거 2017/03/15 01:10 #

    모바일 오류는 고쳤습니다. ^^

    같은 저자의 책이 더 있군요. 한번 구해 봐야겠습니다.
  • 괴인 怪人 2017/03/14 21:06 # 답글

    요즘과는 다르게 1층이 최상층보다 더 비싼 곳이라고 묘사한 그 책이군요 ㅎㅎ
  • 함부르거 2017/03/15 01:11 #

    맞습니다. ㅎㅎㅎ 요즘과는 달리 수도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윗층으로 갈 수록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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