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단상 by 함부르거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 거 같지만 다들 통용하는 말로 가상화폐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잠깐 정리한다.


1. 가상화폐의 가치

가상화폐는 가치가 있는가? 사람들이 그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있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다 가상의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그런 비실재적 존재에 대한 믿음의 발생을 가리켜 인지혁명이라 부르면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꼽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화폐도 가상의 존재다. 만원짜리 지폐의 원가는 고작 100원 정도 밖에 안한다. 우리가 그것을 만원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것은 다들 그게 만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젠 대부분의 거래가 지폐도 아니고 신용카드나 은행계좌를 통해 전자적으로 처리되고 있지 않은가. 그건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숫자의 움직임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게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치 않는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대중이 화폐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폐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즉 신용을 창출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한다. 국가라고 하는 힘이 - 국가도 따지고 보면 가상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화폐를 신용하게 되는 원인이며 화폐에 실재성과 가치를 부여한다.

그럼 가상화폐는 무엇을 가지고 신용을 창출하는가? 알고리즘이다. 블록체인 암호 체계는 위변조가 매우 어렵고, 유통이 가능하고, 희소성이 있다는 화폐적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기술로는 블록체인을 효과적으로 깰 방법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즉,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양자컴퓨터로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현실화 된 것은 아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무력화 되지 않는 한, 인터넷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상화폐는 거래 가능한 자산 내지는 교환수단으로서 유효성을 가질 수 있다. 블록체인보다 해킹에 훨씬 취약한 게임 아이템도 몇천만원씩에 거래되는 판에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위에도 말했지만, 뭐가 자산이냐는 사회적인 인식이 결정할 뿐이다.


2. 투기? 투자? 

위에서 가상화폐는 자산 내지는 교환수단으로서 유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시장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그리고 그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오늘날에는 버블 내지는 광기(Madness)로 까지 표현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그럼 이 거대해진 시장은 과연 정상인가? 여기에 돈을 쓸어 넣고 있는 사람들은 투자를 하고 있는 걸까 투기를 하고 있는 걸까? 과연 이 열풍의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시장이든 초기에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간이 있다. 가상화폐 시장도 기술적 안정성을 증명하던 암중모색기를 거쳐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시작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것 만으로 이것이 투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실 개개인의 차원에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모험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는 투자는 없으며 위험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평소 투자를 안하던 갑남을녀들이 줄줄이 돈을 싸들고 투자를 시작하고, 코찔찔이 어린애들까지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그건 투기다. 튤립 버블이 그랬고 닷컴 버블이 그랬다. 하루 동안에도 시세가 몇십 퍼센트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현 상황을 버블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항상 그렇지만, 투기와 버블은 끝이 나게 되어 있다. 시장은 요동치다가다도 안정을 찾게 되어 있는 것이다. 쉽게 안정되지 않는다면 시장을 운영하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신용이 있어야 하는 금융기관들이 문제가 있는 채권을 마구 팔아치운 덕에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오늘날까지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가상화폐 버블은 어떻게 끝날까? 내가 볼 땐 튤립 버블이 여러 사람 골로 보냈지만 당시 네덜란드 경제에는 큰 영향이 없었던 것처럼, 한강으로 갈 사람 몇 나오는 거 말고는 큰 문제 없이 안정화 될 것으로 예측한다

사실 가상화폐와 가장 유사한 시장은 금 시장이다. 대부분의 금 투자자는 금덩이는 보지도 않는다. 금은 포트 녹스 같은 금고에 쌓여만 있고, 장부상으로만 거래가 오간다. 그리고 자본시장 전체로 볼 때는 돈이 누군가의 계좌에서 다른 누군가의 계좌로 오갈 뿐 큰 부가가치가 생성되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다. 가상화폐도 비슷하다. 시장에 돈이 얼마가 몰리던, 돈이 돌고 돌 뿐인 거다.

우려되는 게 있다면 거품이 꺼질 때쯤 외국의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한국으로 몰려 와서 현금화 하고 빠져나가는, 대량의 외화 유출 사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건데, 이건 금융당국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또 대출 받아서 가상화폐에 투자하고선 날려먹는 부실대출이 생기는 문제가 있을텐데 현재 가상화폐에 몰리는 대부분이 개미들이라는 걸 보면 이것도 전체 경제에는 큰 문제가 안될 것 같다.

사실 진짜로 큰 돈을 움직이는 집단들은 가상화폐에 시큰둥 하다. 금융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얽히지 않는 이상 가상화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거다. 신불자와 자살자야 속출하겠지만, 그거야 개인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개개인의 선택은 당사자가 책임지는 게 맞지 않겠나.

현재의 버블이 끝나고 시장이 안정화 되면 가상화폐도 주식이나 금 같은 자산시장화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프로토콜이 정착되고 나면 금융기관들도 뛰어들 거고 자산가치도 안정화될 것이다.


3. 거래소

사실 진짜 문제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있다. 개폐장 시간도 없이 24시간 돌아가고, 시스템은 불안정해서 접속도 거래도 막 끊기질 않나, 해킹에는 또 취약하다. 마운트 곡스 파산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해킹 한번에 망할 수 있는 게 이들 가상화폐 거래소다. 은행이 이딴 식으로 운영한다고 생각해 보라. 허구헌날 강도가 드나드는 은행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규칙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주식시장의 서킷브레이크처럼 시장을 안정화 시키는 규칙이나, 내부자거래 처벌 처럼 부정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 선의의 시장 참여자를 보호할 장치가 없는 상태에선 제도권에 편입 시킬 수가 없다. 

내 생각엔 주식시장처럼 거래소의 자격요건을 정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폐쇄시키는 등의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지금처럼 무규칙인 상태에선 안정화는 요원한 일이다.


4. 정부

이번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 운운한 건 그야말로 큰 실책이다. 이미 많은 시장 참여자가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거래를 막겠다는 건 시장경제의 ABC도 모르는 만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난 법무부 장관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 사람은 관료 출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대로 대학교수 출신이다. 정말이지 실무를 안해 본 먹물들이란. 정책 실무을 해 본 관료들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어설픈 이상주의에 빠진 책상물림의 충동적이고 멍청한 발언이었다.

중요한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뛰어 들었다는 현실이다. 이걸 억지로 없애거나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경제에 큰 영향을 안 미치도록 유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점차적으로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던가, 중국처럼 아예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던가 정책방향은 설정하기 나름이 되겠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자연 발생한 시장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까 말했듯이 한강 가는 사람들 좀 나오고 나면 거품은 자연히 꺼지게 되어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현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제도적 장치를 준비하는 일이다.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하려 들다간 부작용만 커진다.

가상화폐가 불법적인 금융거래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은 정부의 확실한 고민거리다. 이 점은 우리 나라 혼자서는 어떻게 하기 힘들고,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 맺으며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풀었는데 너무 길어진 느낌이다. 나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은 확실히 거품이라고 본다. 세상에는 언제나 신기술과 신상품과 새로운 시장이 등장한다. 가상화폐도 그러한 새로운 조류 중 하나일 뿐이다. 먼 훗날의 우리 후손들은 지금의 상황을 역사로 배우면서 뉴턴이 했던 말을 되뇌일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 없다고. 

덧글

  • 사회과학 2018/01/12 17:36 # 답글

    말씀하신대로 그냥 무작정 막는다고 될 일인가 싶네요
  • 함부르거 2018/01/12 18:22 #

    이미 300만명이 관여하고 있는 시장을 무조건 막겠다는 건 미친 짓이죠. 전 이래서 교수나 박사들 싫어해요.
  • 홍차도둑 2018/01/13 01:39 # 답글

    화폐의 조건중 하나가 '위조가 어렵다'는 거죠.
    돌 화폐로 유명한 '야프 섬'의 경우 돌이라는 자원 자체가 그 섬에는 없는 정말 '희귀자원' 이기 때문에 화폐로서 성립됬고. 심지어는 '현존하지 않는 돌화폐'지만 '어마무시하게 크고 아름다운 돌이었고, 그것을 실제로 봤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지만 실거래가 되는 예까지 있었으니까요.
  • 함부르거 2018/01/13 16:31 #

    야프 섬은 참 재밌는 사례지요. 인간의 믿음이 가치를 보증한다는 사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법무부는희생된것 2018/01/13 10:08 # 삭제 답글

    서로 책임회피하는 꼬리자르기도 문제죠 아무리 먹물이라도 정부관료 레벨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있을 건데 어그로를 끌 이유가 없습니다 위에서 오더가 내려왔던지 간을 보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진 거죠 먹물이라도 생존본능은 있을 건데요 ㅎㅎ
  • 함부르거 2018/01/13 16:32 #

    사태의 전개를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국정을 운영한다는 사람들이 저리 경솔해서야…
  • 2018/01/13 13: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함부르거 2018/01/13 16:42 #

    그래도 저런 식의 발언은 너무 경솔했습니다. 경제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항상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는 약간의 실수도 사회적으로 큰 풍파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료나 경제학자였다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하죠. 금융위나 기재부 같은 관련 부처에서도 놀고 있는 거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이 문제에 대한 정책방향을 확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로 보이네요.

    투기건 뭐건 문제될 거 같으니 무조건 막자는 발상은 경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최악의 방법입니다. 안자(안영)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고 했죠. 불이 너무 세면 타버리고 약하면 설 익습니다. 그런 조심성이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 타마 2018/01/15 10:33 # 답글

    음... 역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힘들다는 점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인 화폐라고 생각되네요.
  • 함부르거 2018/01/15 10:49 #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화폐보다는 금이나 주식 같은 금융자산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것들 보단 좀 더 유동성이 높은 정도로요. 사실 전 코인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의 응용에 더 관심이 갑니다. 두바이에선 부동산 등기부를 블록체인으로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1/15 20:33 # 답글

    비트코인을 전혀 모릅니다만, 비트코인이 도박화와 광기(?) 뚝, 뚝 묻어나온 투기장으로 변질된것 같습니다. 비트코인의 도박성과 투기성을 비판한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가 나설려 하니까, 청와대가 20~30대의 반발에 깨갱! 하고 물러났어요. 지방선거와 지지층을 지키기 위해서겠죠, 뭐. 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나라는 뭐 하나만 가져다 오거나 현상이 찾아온다면 광기의 도박과 유행으로 전락할까요? 바다이야기, 노스페이스, 평창 패딩, 비트코인 등. 유행을 쫒아다녀 남들에게 꿀리지 않을려는 10대 청소년의 특성이 강한건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 함부르거 2018/01/15 21:13 #

    사실 정부에서 그렇게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트코인 판이 아무리 커져 봤자 찻잔 안의 태풍이예요. 금융기관들이 얽혀 들지 않는 이상 경제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정부에서 신경써야 할 것은 외환유출이나 탈세 같은 부분이지 그 이상의 조치는 필요 없어 보입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투기꾼 몇몇이 한강 간다고 나라 어떻게 되는 거 아니라니까요.

    비트코인이 일종의 도박판이 된 건 맞구요. 왜 그렇게 되는가는 연구 대상이죠. 유독 한국이 좀 그런 현상이 심해요. 김치 프리미엄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경쟁이 극심하다 보니 그런
    세대별 쏠림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추측만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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