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 왕의 공부(김태완, 2011)를 읽고 있는데 기대승 선생 무섭네요. 왜 무섭냐면 말이 졸라 많아요. 근데 그 많은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앞뒤가 딱딱 맞아요. 고집도 졸라 세서 왕이 뭐라고 해도 한 마디도 안 져요. 이건 뭐 철학 전공한 최상급 아가리 파이터예요.(진중권? ^.-;;;) 진중권 류보다 한 수 위인게, 예의 차릴 건 다 차리면서 할 말은 다 하니까 이건 뭐 깔 데도 없어요. -_-;;;
그럼 이런 아가리 파이터가 기대승만 있었느냐... 율곡 이이라는 거의 끝판왕도 있어요. 성깔이라면 누구한테도 안 지던 남명 조식과 그 제자들도 있어요. 이황과 그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던 게 16세기 조선이예요. 왕 노릇 하기 정말 힘든 시절이네요...
선조란 왕이 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게, 14살 꼬맹이가 어느 날 갑자기 왕이랍시고 됐는데, 저런 아가리파이터들이 니가 이걸 잘못했느니 그러면 안된다느니 백날이고 천날이고 떠드는 걸 싫은 내색 한번 못하고 들어주고 있어야 되요.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한마디 하면 백마디 천마디가 되돌아 와요. 꼬맹이 성격이 안 삐뚤어지면 이상하겠다 싶습니다.
책에 있는 기대승 선생 말씀 한단락 옮겨 봅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이걸 한자리에서 줄줄 말하고 있는 인간이라니... ㅎㄷㄷ 이런 사람이 글을 쓰면 어떻겠어요. 과연 당대 최고의 석학 퇴계와 키배를 뜰만 하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왕이 '내가 대신들과 알아서 할테니 넌 닥쳐라!'라고 하니까 '니가 날 말하는 자리에 불러 놓고 뭔 소리냐! 니가 그런다고 내가 닥치고 있을 거 같냐? 이황이 날 천거하고 니가 자리에 앉혔는데 날 말 못하게 하면 날 등용한 니 꼴이 뭐가 되겠니?'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뱅뱅 돌려서 까고 있는 겁니다. 우와 질린다 정말...
대신들과 의논하여 처리하겠다고 하시고, 또 드러난 것을 가지고 그르다고 해야 한다고 하교하시니, 이는 천지와 같은 도량이라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또 두세 사람과 결탁했다는 말은 쉽게 하는 말인 듯 하다고 하교 하시니, 이 또한 지극한 말씀입니다. 다만 전조를 그르다 함은 실로 공정한 말입니다. 전조는 한 나라의 인재를 등용하는 권한을 잡고 있으니 마땅히 어렵게 여기고 신중히 해서 특별히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채집하여 등용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들의 뜻대로만 한다면 또한 그르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전조에서 어찌 현저한 잘못이 없겠습니까? 대신들이 허락하지 않았고 공론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김개를 대사헌으로 삼아 조정을 요란하게 하고 사림의 화를 세웠으니, 전조를 그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상게서 마땅히 그 그름을 아셔야 합니다.
승정원은 간관도 아니고 대신도 아니며, 다만 왕의 말씀을 출납하는 일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설의 직임'이라고 이릅니다. 후설(목구멍과 혀)이란 바로 한 몸의 첫째 관문입니다. 대신과 대간이 말할 수 없는 것도 말하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내상(내부의 재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일에 따라 바로잡으며 소회가 있으면 곧바로 아뢰기 때문에 경연관과 춘추관의 직책도 겸대하는데, 지금은 그 직책과 소임을 다하지 못하므로 세속에서는'이은 吏隱 (어진 사람이 낮은 벼슬자리에 몸을 숨김,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이릅니다. 그러나 신들이 성명한 때를 만나 이 직책을 욕되게 맡고 있으면서 한갖 관작만을 탐하고 연연하여 소회를 아뢰지 않는다면, 평소 유자로서 세운 뜻을 이제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 때문에 면대해서 다 아뢰고자 한 것입니다.
성상께서 행여 '이는 대간과 대신이 할 일인데, 정원(승정원)에서 어찌 이런단 말인가?' 하신다면 온당하겠습니까? 신들이 체차되어가고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와도, 마땅히 말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모두 말해야 합니다. 가까운 신하가 말하지 않는다면, 소원한 신하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까운 신하들이 반드시 말을 다 할 수 있어야, 마치 사람의 한 몸에 혈맥이 흘러 통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혹 관건이 중대한 일이 있는데도 정원에서 말하지 않았다가, 다른 날에 상께서 깨닫고 '근밀한 신하가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하신다면, 죄가 죽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뢰면, 밖으로는 남과 원한을 맺는 일이 많고, 위로는 성상의 위엄을 범하는 일이 또한 많아서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만, 말하지 않으면 한 몸에 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조정을 더럽히고 욕되게 할 것이므로 감이 아룁니다. 소신에게 근심스럽고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벌써부터 아뢰려고 하였으나, 한 몸의 사사로운 일로 임금의 귀를 번독煩瀆(번거롭고 더럽힘)하게 하는것이 극히 황공하여 감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소신은 별로 지식도 없고 기품의 병폐도 많으며 망령된 일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문자를 조금 익혀서 분수에 넘게 헛된 이름을 얻었습니다. 저번날 이황이 물러갈 때 상께서 이끌어 보시고 글을 아는 사람을 두루 물으시자 이황이 마침내 소신의 이름을 들어 아뢰었으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황이 돌아갈 때 한강에 나가 묵었습니다. 소신이 가서 보고 "아뢴 말을 몰래 듣고서 몹시 민망하고 절박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임금의 귀를 번독하게 하였습니까?"라고 하였더니, 이황은 "나는 늘 지방에 있고 어쩌다 경사京師(서울)에 와서도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일찍이 아는 사람이 없소. 그대라면 전날 서간을 통해서 학문을 논하였으니, 내가 아는 사람은 오직 그대 뿐이오. 그대가 남보다 낫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다만 주상께서 하문하시는데 아뢰지 않을 수 없어서 아뢴 것이오. 옛사람도 '네가 아는 사람을 천거하라.' 하였으니 그대가 무엇을 혐의하겠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소신은 마음이 약간 놓였습니다. 그 뒤 '이황이 아무개를 추천하였다.'고 지목하는 이가 매우 많아, 얼굴을 들고 다니기도 어려웠습니다.
성상께서 또 소신을 행여나 글을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셨다면, 이는 곧 임금을 기망한 것입니다. 황공하기 그지 없어 병을 내세워 헐뜯음을 피하려고도 하였으며, 서로 아끼는 친구들도 "너는 헛된 이름을 얻었으니 종당에는 어찌할 것인가?" 하며 경계하는 자가 많이 있었으나, 연이어 가까운 곳에서 모시게 되어 물러갈 수도 없었습니다. 불행히 또 이 일을 만나서 소신의 이름도 그 가운데 끼었습니다. 소신이 만약 몸을 근신하였더라면 어찌 이에 이르렀겠습니까? 더욱 황공하여 어찌할 줄 몰라서,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을 탑전榻前(왕의 자리 앞)에 모두 아뢰려고 한 것입니다. 소신이 경솔하고 엉성하여 세상사도 모르면서 이와 같이 맑은 조정에서 남에게 지목을 받고 있으니, 어찌 민망하고 절박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2011, p.277~280)
덧글
2. 그래서 선조를 100% 바보 암군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게, 이런 인재들을 파악하고 등용하는 안목은 또 조선 임금 중 2,3위는 노릴 만한 수준이었죠. 덕분에 조선 역사상 최강의 인재풀이 완성. 헌데 이런 능력이 어째 임진왜란 지나니까 싹 날아가 버리니.
2. 임진왜란 직전까지는 상당히 괜찮은 면이 많은 왕이었는데 왜란 한방에 그냥 훅 갔죠 뭐... -_-;;;; 스트레스 꾹꾹 눌러 참고 살던 사람이 극한상황을 만나니까 한방에 팍 퍼져 버린 감이 있습니다.
기대승, 이황, 조식, 이이, 성혼, 유성룡 등등
조선의 성리학 연구가 꽃핀 것 같다고 할까나요?
2.선조는 뭐랄까 평시지도자로는 괜찮은데 전시지도자로는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갠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이순신 홀대랑 광해군을 계속 갈궈서 흑화시킨 것 이 두가지..
3. 그와 별개로 저런 경연에서 계속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는 건 저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신하들이 갈궈도 참고 해야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