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vs 사우디 아라비아 - 5:0 by 함부르거

러시아가 개막전에서 사우디를 5:0으로 격파했습니다.

개막전부터 화려한 골 폭죽이 팡팡 터지면서 홈 팬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겨준 경기 되겠습니다만, 내용을 까보면 그리 높지 않은 러시아의 경기력 앞에서도 사우디가 무기력하게 자폭한 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러시아 팀은 수비는 A, 공격은 B 등급 주겠습니다. 수비 조직은 인상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잘 짜여 있습니다. 442 박스형 포메이션으로 라인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수비조직은 유기적으로 잘 작동했습니다. 선수들의 적극성이나 활동량은 홈 팀에 걸맞게 훌륭했구요. 경기 후반에 약간의 위기를 맞은 걸 제외하면 이렇다할 찬스 한번 안 줬습니다. 물론 이건 뒤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사우디의 공격이 워낙에 저열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단 합격점인 수비지만 이집트와 우루과이를 만나 보기 전엔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공격은 이번에 다섯 골이나 넣었음에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합니다. 일단 기본이 선수비 후역습인 팀이라서 그런지 선수들이 후방에서부터 빌드업하는 상황에선 자꾸 헤매고 실수를 연발합니다. 그리 창의적인 공격수도 안 보이구요. 오늘 두 골 넣은 체리세프 선수는 볼 다루는 기술이나 적극성은 훌륭하지만 상황판단 능력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돌격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공격진은 기본적인 능력은 있으나 크랙이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습니다. 수비가 강한 팀을 만났을 때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감독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팀입니다. 아마 다음 경기부터는 이번처럼 적극적 공격으로 나오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것도 같습니다.

암튼 러시아에겐 정말 기분 째지는 경기였습니다. 하고 싶은 건 다 해 본 경기였죠. 그와 동시에 약점과 강점도 다 드러났습니다. 홈 팀이 기세를 탔으니 상대 팀으로선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거 같네요. 

2002년의 대한민국 대표팀이 생각납니다. 홈팀이고, 강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공격력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선수비 후역습 형태가 기본이고 빌드업 능력은 약합니다. 이번 경기 말고 러시아 팀에게 다득점을 바라는 건 별로 현명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수비조직은 준비가 잘 되어 있으니, 수비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16강 진출은 어렵지 않을 거 같습니다.


사우디는 총체적 궤멸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수비는 라인조차 못 지키고, 공격수는 대체 어딜 보고 있는지, 눈은 달려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더군요. 러시아가 강하게 압박축구를 구사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볼 키핑조차 못하고 있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단 자기 진영에서부터 볼을 계속 뺐기고 역습을 당하는 상황에서 무슨 놈의 축구가 되겠습니까?

카드캡터로 유명한 주심인데 러시아 하나, 사우디 하나 밖에 옐로 카드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는 사우디가 투지에서부터 졌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러시아 선수들이 흥분할 상황이 없는, 반칙조차 못하는 그야말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플레이만 연발했습니다. 

상대 팀을 연구는 한 건지도 의문입니다. 러시아의 공격은 패턴이 단순했기 때문에 수비라인만 잘 지키면서 역습을 노리는 전략도 해볼 만 했는데, 그러기는 커녕 초반에 어설프게 공격적으로 나오다가 수비라인까지 다 뭉게졌죠.

맨마킹도 전혀 안됐습니다. 일단 다섯골 전부 수비들이 마킹을 못하는 상황에서 들어갔어요. 대부분 역습 상황에서 허둥대면서 상대 선수를 놓쳐 버렸죠. 주바 선수가 넣은 세번째 골은 수비가 완전히 위치를 잘못 잡았어요. 키가 엄청 큰 선수의 헤딩을 키 작은 수비수가 앞에서 커팅하려면 그게 되나요?

이영표가 지적한 대로 사우디의 공격은 너무 느렸습니다. 볼 한번 잡고, 지켜보고, 그 다음 패스하는 식으로 플레이 하면 아무리 약팀이라도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러시아가 약점이 없는 팀은 아닙니다. 덩치도 크고 수비 조직도 잘 되어 있지만 그리 빠르지 않은 팀이라 압박을 제껴낼 수 있다면 헛점을 많이 찾을 수 있는 팀이기도 하죠. 그런데도 사우디는 자신들의 강점을 하나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우디는 남은 경기들도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정말 사우디 이상한 팀이예요. 아시아 권에서는 제법 잘 하다가도 유럽 팀만 만나면 이딴 식입니다. 이번 경기는 2002년 월드컵 때 클로제에게 헤트트릭을 헌납하면서 0:8로 진 경기를 연상시킵니다. 덩치 큰 백인들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나? 근데 또 이란 상대로는 제법 한단 말이죠. 이란이 러시아보다 축구 못하는 나라도 아닌데. -_-;;;; 

그리고 중계 관련해서, KBS에서 이근호를 선택한 건 정말 실수였어요. 이근호는 그냥 입 닥치고 있는 게 중계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차라리 이영표 혼자 떠들게 놔뒀으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이영표는 사우디에서 뛴 적이 있어서 그거 가지고도 이야기 거리가 한보따리 나오더만요.

암튼 개최국이 시원하게 승리하면서 일단 흥행에서는 성공할 거 같은 월드컵이 시작됐습니다. 매일 매일 경기 보느라 잠 못드는 한달이 또 시작됐네요. 여러분들도 모두들 건강 챙기시면서 즐거운 월드컵 관전 되세요~


ps. 참 전반전에 햄스트링으로 쓰러진 자고예프 선수 이야기 빼먹었네요. 오피셜은 안 나왔지만 아마 한 달은 못 뛸 거예요. 저도 한번 당해본 적이 있어서 압니다. -_-;;;; 축구에서 가장 흔한 부상이지만 심각한 부상이기도 하죠. 러시아는 개막전부터 전력에 누수가 생겼고 선수 본인은 4년을 준비한 월드컵이 30분만에 나가리 됐으니 속으론 피눈물 줄줄 흘리고 있을 겁니다. ㅠㅠ

덧글

  • ㅁㄴㅇㄹ 2018/06/15 08:28 # 삭제

    사우디는 아마 02의 재방송을 보여줄것 같고.. 러시아도 이집트만 어찌 잘 하면 16강은 갈것 같더군요. 그다음 라운드부터는 어렵겠지만요.

    중계를 sbs로 봤는데.. 박지성 목소리가 해설에는 적합한 톤이 아니고 초보 해설 한명을 단독으로 해설시키는게 나온게 좀 마이너스가 되겠다 싶더군요.
  • 함부르거 2018/06/15 09:08 #

    국내 방송사 중에서 제대로 축구 해설하는 데가 없어요. ㅠㅠ 그나마 KBS가 나았는데 이근호가 흐름 다 깨먹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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