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월드컵이 생각나네요 by 함부르거

샤다라빠 만화 - 킹메이커 대한민국


위의 글들을 보니 20년 전 프랑스 월드컵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 때 언론의 설레발이 굉장했습니다. 아시아 예선을 굉장히 좋은 성적으로 통과해서 16강은 문제 없다고 엄청 떠들고 있었죠. 그리고는 한 게임 한 게임 질 때마다 그놈의 경우의 수 따지던 꼴이 참 가관이었죠. 결국 대회 끝나고 나오는 말은 언제나의 레퍼토리였습니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그 때 전적이 멕시코한테 3:1로 지고, 네덜란드 한테 5:0로 지고 - 그 때 네덜란드 감독이 히딩크였습니다. -, 벨기에한테 1:1로 겨우 비겼죠. 벨기에는 그 덕분에 네덜란드, 멕시코와 무승부를 거두고도 조별예선 탈락했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세계 축구 흐름에 대한 무지, 선수들의 낮은 기량, 지도자의 역량 부족 등등 세계 수준에 비하자면 한참 모자란 팀이 한국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입장에서 이런 현실은 공포로 다가왔죠. 축협이 그 때 어떻게든 한국팀 실력을 올리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했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유럽 빅리그로 선수보내고, 히딩크 영입하고, K리그를 박살내다시피 하면서 대표팀 소집훈련을 하기도 했죠. 온갖 무리를 하면서도 목표는 16강 진출 하나뿐이었습니다. 16강만 진출하면 그 모든 것이 용서받는다는 식이었죠. 그 이상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했어요.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이 그랬죠.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그 기적이 현실을 가리고 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기적 이후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도 늘어나고 박지성 같은 대단한 성공사례도 나왔죠. 2002년 멤버들이 뛰던 2006, 2010 월드컵에선 그럭저럭 성적도 잘 나왔구요. 하지만 과연 한국 축구는 수준이 올라갔는가? 한국은 강해졌는가? 묻는다면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저 2002년 영광의 멤버들이 버텨줬을 뿐이죠.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는 2002년의 버프가 빠지고 원래 한국 축구의 자리로 돌아온 거 같습니다. 오히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실력이 올라오면서 이젠 아시아에서도 최강자는 커녕 월드컵 진출도 걱정해야 하는 판이죠. 그러니까 상대적으로는 98년보다도 약해진 겁니다.

헌데 사람들의 기대치는 2002년의 그것에 맞춰져 있으니 욕이 나오게 되는 거 같아요. 언론도 그걸 부추겨 왔구요. 언론이야 원래 그랬지만, 인터넷도 일반화되고 외국 축구에 대한 정보도 널리 퍼지면서 더 이상 옛날 같이 세계의 벽 운운하면서 자포자기하는 건 용납이 안되는 거죠. 세계 수준에 비하자면 한참 낮은 팀인데 보는 눈 높이만 세계수준에 맞춰져 있으니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이제는 현실을 볼 때가 된 거 같습니다. 한국은 약합니다. 98년도 대표팀보다도 약합니다. 그냥 수준이 떨어집니다. 지도자도 선수도 다 수준이 낮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당연한 일에 분노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 좋은 성적을 바란다는 건, 아직 기지도 못하는 아기한테 뛰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그동안의 분노를 반성하겠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한국 대표팀의 당연한 성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한화 이글스 팬질도 계속 해왔는데 축구 대표팀이라고 용납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열심히 뛰는 선수들 보면서 박수나 보내겠습니다. 

지는 건 당연합니다. 
이기면 기쁠 겁니다만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열심히 뛰는 거 같지 않아 보이는 건 체력 부족일 겁니다. 
투혼이 없어 보이는 건 그냥 기술이 부족한 거겠죠.

이게 한국 축구를 보는 올바른 자세일 겁니다. 90년대 이전에는 항상 이랬어요. 우리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고 있는 한국 팀을 바라 봐야 합니다. 1986년 이전에는 월드컵 진출도 못하던 나라입니다.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웁시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ps. 분노를 가라앉혀야 하는데 왜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를까요. 수양이 부족한 저 자신을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덧글

  • 음유시인 2018/06/19 19:28 #

    굳이 저런 글에 반응을 하실 필요가 없을거 같은데요. 물론 무조건적이고 그저 스트레스나 풀 용도로 하는 비난이야 당연히 상관이 없죠. 아무리 못하고 어쩔 수 없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상상을 초월하는 실수로 아군 선수 팀킬이나 하고, 축협의 병폐는 영원히 지속될것만 같은 수준 이하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데 '그냥 원래 그런거지 뭐...' 라고 넘어가는 거야 말로 발전의 길을 막는 엄청나게 위험한 사상이죠.
  • 함부르거 2018/06/19 19:33 #

    축구인들은 예전처럼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으니 거기에 맞춰 주자는 겁니다. 갈 데까지 가 봐야 정신들 차리겠죠. 아예 영영 정신 못차릴 수도 있구요
  • ㅁㄴㅇㄹ 2018/06/19 19:34 # 삭제

    그냥 황금세대가 사라지고 나서 겪는 부침..이라고 보면 안될까요. 다른 나라도 ( 심지어 이탈리아 네덜란드 칠레도!) 황금세대의 노쇠화나 은퇴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고 월드컵에 출전 못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야 대륙이 아시아다 보니 다른 나라가 예선에서 겪어야 할 일을 본선에서 겪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월드컵 2번 말아먹었으면 개중에 급한 놈들이 알아서 불을 끄겠지요. 아니면 다 태워먹고 도망치거나.
  • 함부르거 2018/06/19 19:41 #

    그렇게 말씀하시니 약간은 마음이 놓이네요. 하지만 월드컵 본선 말아먹는 정도로는 안되고, 한 12년 정도 월드컵에도 못 나가 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신 못차리고 복싱 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깟 공놀이 안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 ㅁㄴㅇㄹ 2018/06/19 20:16 # 삭제

    뭐 그러면 한때 좋은시절을 추억하는 농구처럼 되겠지요.. 농구대잔치 시절을 추억하는 것처럼 2002년 월드컵을 추억하고 ㅋㅋㅋㅋ...
  • 무념무상 2018/06/19 20:24 # 삭제

    남자배구도 세계무대에서 멀어진 지 오래죠 ㅋㅋㅋ 12년째 올림픽 출전 못하고 있던가... 여자배구도 김연경 은퇴 후 상황은 이미 불보듯 뻔하구요. 그냥 한국 구기종목 자체에 관심을 끄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함부르거 2018/06/19 21:16 #

    어떤 종목이든 앞으로 한 20년은 바닥에서 놀 거 같아요. 국운이 바닥으로 처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바닥을 치다가도 또 신기하게 올라오고 하는 게 우리 나라 스포츠인 거 같습니다.
  • 2018/06/19 22:4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6/19 23: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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