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알못이 본 201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by 함부르거

"강팀은 이기는 방법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약팀은 한두가지 밖에 없다."

이번 경기를 본 감상은 이겁니다. 

포털 댓글을 보면 케인 선발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 많은데, 제가 볼 땐 "케인 말고 누굴 쓰냐?"는 생각부터 듭니다. 

다들 봤다시피 리버풀의 수비진은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거 같은 단단함을 자랑합니다. 거기에 마누라(마네-피르미누-살라) 라인의 토나오는 전방압박은 상대 팀으로 하여금 숨도 못쉬게 만드는 위력이 있어요. 이런 강력한 수비를 가진 팀을 상대로 토트넘이 골을 넣을 방법이 뭐냐? 제가 축알못이라 잘 모르긴 하지만 시즌 중에 한번 써 봐서 효과를 봤던 방법, 즉 케인을 중심으로 해서 라인브레이킹을 시도하고 케인으로부터 나오는 세컨 볼을 손흥민이나 모우라가 받아 먹는 식의 패턴 외에는 없지 않았나 싶어요.

케인을 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케인이 부진했다. 끝. 이겁니다.

포체티노가 여론에 밀려서? 구단주 의사로 케인을 기용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그 자리에 못 있죠. 뚝심이 있고 자기 신념이 있는 지도자인데 그런 식의 의견은 그에 대한 모욕으로 보입니다.

모우라 선발? 제가 축알못이지만 아무리 그림을 그려 봐도 모우라가 리버풀 수비를 뚫는 모습이 안 그려지는데요? 모우라는 손흥민 하위호환이라... 실제로 교체로 들어와서도 별 활약 못했구요.

요렌테? 요렌테는 발이 느려서요. 좋은 선수지만 케인처럼 상대 수비라인을 밀어내는 데는 부족하죠. 요렌테가 위력을 보이려면 패널티 에리어 부근에서 플레이 해야 하는데 리버풀처럼 라인을 잔뜩 끌어올리는 팀한테는 소용 없습니다. 오히려 요렌테가 나오면 패턴이 고정되니까 케인 나올 때보다 수비하긴 훨씬 쉽습니다. 아약스전에서 요렌테가 먹힌 건 상대 센터백들이 키가 작아서예요. 반 다이크 처럼 키 큰 애들 잔뜩 있는 팀한테는 흠...

그리고 다른 분들도 이야기했지만 시작하자마자 골 먹은 게 너무 컸죠. 포체티노 감독이 오만가지 수를 준비했어도 그거 한방에 다 어그러졌습니다. 사실 토트넘은 경기를 정말 잘 준비했습니다. 선수들 몸 상태도 최상이었고 나름 시즌 중에 최고로 강력했던 라인업을 들고 나왔어요. 그런데 상대는 더 잘 준비하고 나온데다 운까지 없었으니...

그렇다고 리버풀한테 쉬운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볼 때 리버풀이 준비한 공격수단은 세가지 정도 되는데, - 실제는 훨씬 많겠지만 제가 보는 시야 안에서 - 하나 말곤 통하질 않았습니다. 그 수단은 이렇습니다. 

첫째 강력한 전방압박으로 토트넘 수비의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실수를 유도한다. 두 골 모두 이렇게 나왔죠. 

둘째 토트넘의 양쪽 측면을 공략한다. 이건 안 통했습니다. 몇 번 찬스를 만들긴 했지만요. 경기 전 다들 로즈랑 트리피어가 구멍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두 선수는 정말 잘 해줬습니다. 제가 토트넘이 정말 잘 준비했다고 말하는 게 이런 부분이예요. 

셋째 피르미누를 중심으로 중앙에서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한다. 피르미누는 케인과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부상에서 막 복귀해서 경기감각이 영 아니더군요. 그러니 교체됐죠. 리버풀은 피르미누를 교체하고 골을 넣을 수 있었지만 토트넘은 케인을 교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뎁스의 차이입니다.

요약하자면 토트넘은 한가지 수가 막히면 다른 수가 없었지만, 리버풀은 하나가 막히면 바로 다른 수를 꺼내들 수 있었습니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란 이런 겁니다. 약팀도 강팀을 꺾는 방법이 있지만, 한두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강팀에겐 승리를 위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는 거구요.

이번 시즌 토트넘 보면서 느낀 게 꼭 빌리 빈이 머니볼하면서 키운 오클랜드 같다는 겁니다. 5툴 선수는 비싸니까 1툴 3툴 선수들 끌어 모으고 가장 중요한 포지션에만 5툴 선수 써서 최적의 전술로 실적은 올리지만 결국 큰 무대에서는 미끄러지는 게... 다들 알다시피 머니볼도 돈 많은 팀들이 똑같이 따라하니까 금방 뒤쳐지게 됐죠.

소녀전선으로 치면 5성인형 하나에 3~4성으로 채운 라인업 가지고 5성인형으로 꽉꽉 채운 팀한테 도전한 격입니다. 인형 조합을 쥐어짜고 극한의 컨트롤을 하면 거신도 물리칠 수 있지만 인형들은 걸레짝이 되고 계속해서 이길 수는 없죠.

손흥민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얘는 제가 볼 때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봐 한국사람들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뭔가 하나의 지상과제가 주어지면 그거만 생각하느라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는 거죠. 시작하자마자 한골 먹으니까 골 넣을 생각으로 가득해서 앞으로 돌진하는 것만 반복했습니다. 머리 속에 "슈팅-골-슈팅-골" 이거 밖에 없는 건데 수비 입장에선 정말 쉬워지죠. 얘가 뭘 노리는지 다 보이니까. 지난 월드컵 스웨덴전, 멕시코전에서 얘가 딱 이랬어요. 항상 이러는 건 아닌데, 뭔가 다급해지면 다른 생각을 못하는 거 같아요.

전반 중반에 손흥민이 로즈하고 패스가 안 맞으니까 로즈한테 화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볼 때 그 장면은 이렇습니다. 로즈는 그래도 감독이 지시한대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플레이하려고 했는데, 손흥민이는 무조건 앞으로~! 였으니 안 맞는 거죠. 이 문제는 손흥민과 알리의 위치를 바꿔서야 좀 해결됐습니다만 여전히 원패턴이었던 건 마찬가지였구요.

손흥민은 분명 뛰어난 선수가 맞고 잘 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한두개의 툴에 특화되어 있고 다방면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선택지를 다양하게 가져가질 못하는 거죠. 분명 위협적이지만, 상대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아자르나 메시, 호나우두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와 비교하면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간만에 나온 세계수준의 한국 선수가 이런 결점이 있다는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만 그건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일 겁니다. 손흥민만한 클래스의 선수도 쉽게 나오는 게 아니죠.

제가 축알못이고 여러 전문가님들이 계신 이글루스에서 이런 글 싸재끼는 게 좀 부끄럽습니다. 저는 생각나는 걸 글로 안 쓰면 뭔가 병이 나는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 많은 분들의 고견 기대합니다.

덧글

  • 트레버매덕스 2019/06/03 18:41 # 답글

    케인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이 비슷한데 풀타임 출전시킨건 이해가 안되더군요. 물론 중간에 교체를 해줬더라도 이기기는 힘들었겠지만...
  • 함부르거 2019/06/03 18:44 #

    한골 먹히고 시작한 게 크죠.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나마 라인 브레이크 가능한 케인을 빼는 건 공격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니…
  • 꼴리검 2019/06/03 22:41 # 답글

    글쎄요... 케인의 폼을 보면 연습때 잘 했을거 같지가 않은데 저런 몸상태의 케인을 감독의중으로 기용했다고 생각되진 않아요

    감독에 대한 모욕이니 어쩌니 하시는데 현대 프로스포츠에서 스타선수가 갖는 파워는 감독을 아득히 능가합니다

    매우 특별한 몇몇 감독들만이 그 역학구도를 뒤엎고 강력하게 선수를 통제할 수 있죠(알렉스 퍼거슨, 그렉 포포비치 정도?)

    영국축구의 에이스인 케인을 EPL팀의 감독이 어찌할수 있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뻈다가 케인이 나는 토트넘에서 행복하지않다 뭐 이러기라도 하면 굉장히 곤란해지니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했을거라 생각합니다
  • 함부르거 2019/06/03 23:07 #

    그럴 수도 있지만 딱히 케인 쓰는 거 말고는 답이 없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케인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있었다면 썼겠지요. 그리고 케인 몸 상태는 좋았다고 봐요. 경기감각이 문제였죠.
  • 2019/07/01 15: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함부르거 2019/07/01 15:49 #

    기계식 키보드 써 보신 적 없으시죠? 그 어떤 기계식 키보드도 K120보단 키압 낮고 부드럽게 작동할 겁니다. 물론 가격도 K120보단 훨씬 비싸죠. ^^;;; K120은 그냥 염가형 멤브레인 키보드일 뿐입니다. 게임용이면 무한동시입력 지원되는 기계식 키보드 아무거나 사셔도 매우 만족하실 걸로 확신합니다. 기계식 쓰다가 더 좋은 걸 찾으실 수는 있겠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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