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 - 템페스트 - 이제 보니 이거 거의 스릴러물... ㄷㄷㄷ by 함부르거

어제 밤이 잠이 안와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오디오북으로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읽었던 거긴 한데 하도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또 가볍고 짧은 이야기라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죠.

막상 본격적으로 들어 보니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하게 되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뭐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난 노인의 집념에 가득찬 복수극인 거예요. 이 템페스트의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 프로스페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자기 생각대로 꾸며 나간 음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원래 밀라노의 영주입니다. 영주 일은 안하고 책만 파다가 실무를 담당하던 동생에게 밀려났죠. 바다 위에서 추방당한 그가 천신만고 끝에 딸과 함께 마녀의 섬에 와서 한 일은 마법을 갈고 닦은 겁니다. 

그 마법으로 한 일이 뭐냐? 일단 죽은 마녀의 아들과 요정들을 노예로 부려먹었습니다. 마녀의 아들 칼리반은 추하고 악하다고 묘사되는데 따지고 보면 장애인이죠. 요정의 왕 에리얼은 자유를 원하지만 마구 호통치면서 자기가 권좌에 복귀할 때까지 뻐골 빠지게 부려 먹습니다.

동생과 나폴리 왕이 탄 배가 폭풍에 휘말린 것도 그가 마법으로 일으킨 겁니다. 그리고는 자기 계획대로 그 사람들을 각각의 장소에 흩어 놓고 일을 꾸며 나갑니다. 자기 딸 미란다와 나폴리 왕자 퍼디난드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동생과 나폴리 왕을 회개시키고, 결국 딸은 미래의 왕비로 만들고 자기는 권좌로 복귀하죠. 결국 모두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건이 해결되지만, 이 모든 것은 프로스페로가 권좌로 복귀하기 위해 사람의 심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논 결과인 거죠.

그 중 가장 쇼크였던 건 퍼디난드가 미란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게 자연스런 게 아니라 프로스페로가 마법으로 꾸민 일이었단 겁니다. 와 이거 듣고 어찌나 쇼크였던지... 아니 난 왜 어릴 적에 이걸 그냥 넘어갔을까요?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프로스페로가 완전 달라 보입니다. 소름 돋을 정도로 권모술수에 능한 노인인 거예요. 요정들이나 칼리반에 대한 대우를 보면 딱 그 시대 수준의 권력층이구요. 딱히 사람 죽이는 이야기가 안 나와서 희극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그가 밀라노에 수월하게 복귀하기 위한 술수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섬을 탈출해서 현재 권력자인 동생에게서 순조롭게 권좌를 넘겨 받을 때까지만 참고 있는 걸 수도 있다구요. 나폴리 왕과 사돈 맺었겠다, 권력만 되찾으면 못 할 게 뭐 있겠어요? 오디오북 들으면서 프로스페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무섭던지... ㄷㄷㄷ 

암튼 어릴 적에 읽은 고전들은 나이 들어서 한번씩 다시 펴 볼 필요가 있는 거 같습니다. 관점이 전혀 달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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