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서서 1990년대를 돌아보다(1) by 함부르거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일 것이다. 미국의 상원 청문회에서 한국이 끊임 없이 거론되고, 세계의 주요 언론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을 계속 다룬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대중적인 인식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이런 인식이 대부분의 국민들, 특히 젊은 층들에게 확산되고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것은 다른 나라 대중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한국이 1세계 선진국이란 것은 적어도 식자층 안에서는 빠르면 2000년대 초반, 늦어도 2010년대 이후에는 널리 통용되는 상식이었다. 한국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기술적 트렌드에 민감한 지식인이라면 한국을 신흥 선진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2002년 독일인 교수가 강력한 경쟁자로 한국을 꼽는 걸 보고 약간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거침 없이 시장을 파고 드는 한국의 산업력이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항상 대중의 인식이란 것은 실질보다 늦게 확산되기 마련이다. 실질적으로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으나 대중이 그걸 체감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2010년 쯤에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선진국 대중들에게 한국은 선진국이냐고 물어 보면 그리 긍정적인 답변은 안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은 선진국이었고, 이번 코로나 사태는 그걸 확인하는 사건에 불과하다.

현실 인식에는 세대간 차이도 존재한다. 나같은 중년 세대는 어릴 적 제3세계 독재국가 수준이었던 한국을 보다가 어느 순간 선진국으로 변한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한 중이다. 노년 세대들은 아직도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젊은 세대는 한국이 선진국이 아닌 적을 본 적이 없다. 2020년 총선의 결과는 이러한 세대간 인식의 차를 반영한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전제 하에 정책을 세우지 않는 정당은 앞으로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는 게 내 감상이다. 뭐, 정치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두자.

2020년대 선진국 대한민국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시작점은 어디일까? 

세상에 근원이 없는 일은 없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그보다 과거의 사건에 토대를 두고 있다. 끊임 없는 시간의 흐름을 거쳐 수면 하에 있던 의식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사건을 만들어 낸다. 연속되는 사건의 흐름 속에서 어느 특정한 사건만을 짚어서 이게 원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촉발되는 중요한 사건, 시기는 존재한다. 

나는 90년대야말로 대한민국이 질적으로 변화하여 현재의 기초를 만들어낸 시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리고 젊은 시절 경험했던 시대라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질적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하나 하나 사건들을 짚어 가며 의미를 따져 보려고 한다.


1. 3당 합당, 의회 중심 정치의 시작

1990년, 3당 합당이 있었다.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주도로 김종필의 공화당과 당시 여당인 민정당을 합쳐서 거대 여당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당시엔 민주투사가 군부독재자와 야합했다고 엄청난 비난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3당 합당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의회 권력이 행정부 권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 첫번째 사건이다. 왜 3당 합당을 했는가? 여당 의원 수가 적으니 정부가 정치를 할 수가 없었던 거다. 즉, 의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의회를 장악하지 않는 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는 행정부가 의회를 압도하던 독재국가 대한민국이 드디어 진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한 증명이다.


2. 독일 통일, 진지한 논의의 시작

독일 통일은 당시 한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왜 우리는 저렇게 못하냐는 한탄에서부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까지 온갖 반응이 나왔다. 성급한 대학생들은 당장 통일을 하자, 아니 통일은 됐다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뭐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성급한 정도를 넘어서 순진한 거였지만.

중요한 건 독일 통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도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거다. 통일비용 이야기도 이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통일 논의가 선언적, 관념적 정치술에 불과했다면 이후에는 실질적인 부분도 고민하게 되었다.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경제적, 정치적인 면에서 한국의 성숙을 촉구하는 동기가 되었다. 서울대에 북한학개론 강좌가 개설된 것도 이 때였다.


3. 한소 수교, 탈냉전 시대 자주외교의 시작

공산주의 수괴 소련과 외교를 한다! 당시에는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었다. 그 전부터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와 수교를 했으나 소련이라는 나라는 급이 완전히 다른 경우다. 이전의 한국은 말 그대로 미국의 위성국가로 냉전 시대의 부속품에 불과한 지위였지만 한소 수교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립하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4. 인터넷, 미약한 시작이나 창대하여 지리라

1980년대부터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컴퓨터 네트워크가 구성되기 시작했고 90년대에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4년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월드 와이드 웹(WWW)이란 것이 막 소개되고 있었다. lynx라는 텍스트 브라우저를 써본 것이 내 인터넷 경험의 시작이다. 얼마 후 넷스케이프가 나오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나왔다. 그 이후의 변화는 나보다 더 잘 알 사람들이 많으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빼면 얼마나 불편할 지, 얼마나 재미 없을 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국에서는 클린턴 정부 시절 정보고속도로 사업을 하면서 미국의 전국망을 완성했고, 한국도 김대중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깔았다. 90년대에 시작한 망 구축 사업은 오늘날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거대한 변화를 밀어 붙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덧글

  • 까마귀옹 2021/02/18 10:14 # 답글

    네티즌들 사이에선 다른 의미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까지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개발도상국이니 좀만 더 봐주세요'라고 하며 선진국으로서 행해야 할 의무를 피한 부분이 여럿 있었거든요. WTO의 농업 분야에서 한국이 아주 최근에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게 그 예이죠. 그런 식으로 얻었었던 혜택이 꽤나 달콤했던지라. ㅋㅋㅋ
  • 함부르거 2021/02/17 16:52 #

    이미 90년대에 OECD 가입하고 PKO에 참여했는데 계속 개도국 지위 가지고 있었으니 여러 가지로 모순된 시대이긴 해요. ^^;;
  • dolhosub 2021/02/25 00:17 # 삭제 답글

    뭐 IMF는 96년인가부터 우리나라를 advanced economy로 분류 했었으니까. 물론... 잠시 몇년간 다시 제외 했었지만......;
    ...그러고보니 노년층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2년쯤 전에 아부지랑 이야기 할 때, 울 아부지도 아직도 대만이 우리보다 잘 사는줄 알고 계셨었던게 기억나네. 내가 역전한지 오래라고 이야기 해 드리긴 했었지만 ㅋ
  • 함부르거 2021/02/25 01:29 #

    나도 독일 가기 전엔 우리 나라가 발전한 나라란 걸 생각 못했으니 말이지...ㅎㅎ 요즘 일본 꼴 보면 정말 격세지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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