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사업계획의 기본 - 예산을 타내려면 by 함부르거

예전에 제가 일하던 내용은 남들이 써 놓은 사업계획서를 읽고 평가하거나 조언을 해주는 거였습니다. 주로 예산을 타내서 일을 하려고 하는 공공사업의 경우지요.

사업계획서를 엄청 읽다 보면 어떤 사람은 잘 썼고 어떤 사람은 참 못 씁니다. 어떨 때는 쓴 사람더러 '넌 니가 쓴 계획서를 읽어 보기는 했냐'고 되묻고 싶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 정도로 기획이란 걸 모르고 자기가 뭘 쓰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잘 쓴 계획서와 아닌 것의 차이는 딱 하나입니다. 읽는 사람이 알고 싶은 이야기를 썼냐는 거지요.

못 쓴 계획서는 뭘 하겠다고는 하는데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무 내용을 간략하게만 적어 놓기도 하고, 아니면 엄청난 양의 도표와 자료로 범벅을 해 놔서 대체 뭐가 중요한 지 알 수도 없게 해 놓습니다. 아무리 읽어 봐도 뭘 하겠다는 건지 감이 안 잡힙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막 하는데 정작 읽는 사람이 알고 싶은 이야기는 안 써놓습니다.

공공사업의 계획서를 읽는 사람들은 뭘 알고 싶어 할까요? 첫번째는 당연하지만 '뭘 하겠다는 것인가'입니다. 다른 말로는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라고 해야겠죠. 그걸 읽는 사람 입장에서 한 눈에 알 수 있게 써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고는 뭣 때문에 하는 거고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 왔고 얼마가 필요하고 이런 이야기만 잔뜩 늘어 놓으면 읽는 사람은 행간에서 사업내용을 파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읽는 사람 고문하자는 의도라면 모를까 돈 타내고 일을 추진해야 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퇴짜 맞기 딱 좋죠.

두번째로 읽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건 손익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안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또는 '그걸 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입니다. 간단한 거 같은데 이건 쏙 빼놓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지들 사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걸 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왜 해야 하는지 말을 안하니 환장하죠. 공공사업은 딱히 안해도 큰 문제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걸 설득 못하면 예산 타내는 건 난망이라고 봐야죠.


글을 쓸 때는 항상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감정을 털어놓거나, 사실을 전달하고자 할 때는 쓰고 싶은대로 써도 상관이 없겠죠. 그러나 남을 설득하려 할 때는 반드시 그것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가장 효과적인 길을 택해야 합니다. 오늘도 예산을 타내기 위해 뭔가를 쓰고 계시는 여러분께서는 그 점을 반드시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읽는 사람 괴롭게는 말아야 하지 않겠어요.

덧글

  • 까마귀옹 2021/02/17 11:51 # 답글

    이는 공공사업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 혹은 개개인 간의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계획서에서도 통하는 부분이지요.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처럼요.
  • 함부르거 2021/02/17 17:32 #

    남을 설득하려면 먼저 대상을 알아야죠. 영상이건 글이건 다 마찬가지인데 자주 망각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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