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새로운 아프간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by 함부르거

왠만하면 시사 문제에는 블로그를 안 쓰려고 하지만 아프간 문제는 지적 호기심을 심히 자극하는 관계로 쓰지 않을 수가 없다.

20년을 끌어 오던 아프간 전쟁은 결국 1975년 사이공의 재판으로 끝났다.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미국이 떠나는 순간 아프가니스탄의 허수아비 정권은 바로 무너질 것이란 걸. 물론 미국 정부도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을 뿐이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 친구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항상 있다. 다른 말로 순진한 거라고 해야 하겠지.

대체로 서방 진영은 패닉이고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 친구들 이상으로 순진한 유럽이나 여타 친구들은 제쳐 두자. 내가 궁금한 건 미국의 실패를 고소하게 보는 나라들이 언제까지 웃음을 계속 지을 수 있는가다.

지금 좋아라 하는 나라들 과연 속이 어떨까? 이들 중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다. 러시아는 두말할 것도 없다. 40여년 전까진 아프간에서 직접 싸우고 있었고 체첸과 아프가니스탄은 밀접한 관계다. 이란은 항상 아프간과 역사적인 앙숙이다. 19세기까지도 이란의 샤는 아프간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중국? 국경은 그야말로 손톱만큼 붙어 있지만 위구르 문제라는 폭탄이 있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이 카불 대사관을 유지하면서 탈레반과 밀접한 접촉을 하고 있는 건 역설적으로 아프간 문제에 절대로 개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탈레반 니들은 제발 거기 처박혀서 나오지 말라고 열심히 달래고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당분간은 통할 거 같고.

문제는 이 아프가니스탄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강대국들이 얽혀들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론 이란과 카프카스 지역, 남쪽으론 인도와 파키스탄, 북쪽으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회교국들에 연결되는 나라가 강대국들의 관심에서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지금 탈레반이 하는 걸 보면 얘네들도 그동안의 전쟁을 통해서 학습을 좀 했는지 세련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 중인 거 같다. 국제사회에서 또라이로 찍히면 괴롭다는 걸 배웠다고 해야겠지. 매우 희박한 확률로 보이지만 탈레반이 이란 정도의 세련된 정치체제만 구축해도 이 지역 정세는 굉장히 많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매우 희박한 확률'이란 표현을 썼듯이 탈레반이 제대로 된 현대국가 수준의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아프간은 예나 제나 온갖 민족과 부족과 씨족들이 다들 제각각 동네에서 끗발 세우면서 각종 다툼에 여념이 없는 나라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대세를 따라서 표변하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조금만 틈이 보여도 뒤통수를 치고 나오는 게 아프간 민심이다. 탈레반이 1차 집권기에 공포정치로 일관했던 것도 이런 정치환경이 만든 것이고. 

언제나 - 천년 전이건 백년 전이넌 지금이건 - 아프간이란 국가를 완전히 장악한 정부는 없었다. 탈레반이 이 불가능한 명제를 달성하는 최초의 정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안된다는 데 걸겠다. 이전의 바지사장들보단 낫겠지만 오십보 백보 도낀개낀이 되겠지.

자,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의문이 나온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은 지하드 전사들의 해방구가 되었다. 과연 그들의 총구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중국은 탈레반과 혐력해서 위구르족 문제를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까? 탈레반이 통제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과연 모든 지하디스트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의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ps. 최근에 그레이트 게임을 읽어서인가 말이 길어졌습니다. 하여간 카프카스 쪽도 그렇고 이 동네는 진짜 골치아픈 동네... 한반도에서 태어난 게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쪽 동네 역사를 알게 되면 그런 생각 쑥 들어갈 겁니다.

덧글

  • 도연초 2021/08/17 12:25 # 답글

    그렇잖아도 예전에 IS와 상호 전쟁선포를 했던 적이 있던 걸 보면(현재에도 잘랄라바드 부근-카이바르 고개 방면에 IS 아프간 지부가 버젓이 존재합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의 이슬람주의 군벌 전체를 통제하는건 불가능할 겁니다. 뭐 이러나 저러나 에일리언 vs 프레데터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상황이겠지만요.
  • 함부르거 2021/08/17 13:20 #

    역사적으로 카불의 정부가 전 지역을 통치했던 적이 없습니다. 현재도 불가능하구요. 주변국들 입장은 제발 니들끼리만 싸우고 나오지 말라는 거겠죠.
  • 존다리안 2021/08/17 12:32 # 답글

    아마 미국 정부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애당초 여긴 계속 남기 꺼려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욕먹겠지만 이걸로 한동안은 지들끼리 툭탁거리게 놔둘 수 있게 되겠죠.
  • 함부르거 2021/08/17 13:20 #

    미국이 철수를 고려한 지는 한참 됐죠. 빈 라덴 처단 이후엔 남아 있을 명분이 없기도 했구요. 명예로운 철수를 원한 것 같지만 그게 될 리가...
  • 피그말리온 2021/08/18 01:28 # 답글

    하도 정신나간 친구들을 많이 보니, 그래도 탈레반은 조금 학습이라는게 되어있지 않을까라는 되도않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요. 애초에 한동안은 내부 정리하느라 정신 없겠지만요.
  • 함부르거 2021/08/18 01:48 #

    탈레반은 그래도 규율이 잡혀 있는 집단이니까요. 지도부가 어떻게 나오느냐 주목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 역사관심 2021/08/18 01:45 # 답글

    "한반도에서 태어난 게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쪽 동네 역사를 알게 되면 그런 생각 쑥 들어갈 겁니다.---> 백만번 동의합니다.
  • 함부르거 2021/08/18 01:53 #

    답이 없는 동네죠. 누구 말대로 나무부터 심어야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니까요.
  • 곰돌군 2021/08/18 11:08 # 답글

    어린 사자는 다시 판지시르로 들어갔고.. 북부 동맹은 기회만 노리고 있고 인도는 극렬 이슬람 국가는 좀.. 하면서 찝쩍거리고 있고 파키스탄은... 9.11 시즌 2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고.
    러시아는 윗동네 스탄들 한테 집안 단속 잘하라고 신신 당부중이고 중국은.. 뭐 늘 그렇듯이 돈줘서 달래는 쪽을 선택할것 같네요. 근데 제네들이 얌전히 있을거 같진 않다는게..-_-;
  • 함부르거 2021/08/18 13:31 #

    저런 전사님네들 특징이 돈은 돈대로 받고 하고 싶은 건 맘대로 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ㅋ
  • Charlie 2021/08/18 13:39 # 답글

    탈레반 전사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범퍼카 타는 사진을 보면서 미국이 포기하고 내려놓은 이 똥무더기가 어느쪽으로 흘러내릴지 참...;

    탈레반이 제대로 된 정부를 수립하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원숭이 천마리가 타이프라이터 천개를 치다보면 언젠가는 성경 전권을 쓸 수 있다죠?
  • 함부르거 2021/08/19 10:21 #

    탈레반 뿐 아니라 어떤 집단도 아프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정부로 기능하긴 힘듭니다. 아프간 역사에서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정권들은 탈레반 못지 않게 폭력적인 독재자들이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죠.
  • areaz 2021/08/18 17:50 # 답글

    현실 감각이 있는 집단이라면 세계적으로 욕먹을 짓이 뭔지는 알고 몸을 사릴 텐데 21세기에 종교 원리주의를 추구한다는 시점부터 나가리라 전혀 기대가 안 됩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필요한데 교육수준 밑바닥에 폭력적 압제에 찌든 사람들이라 그것도 기대하기 힘들겠죠. 민주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 함부르거 2021/08/19 10:22 #

    저 동네는 민주화 이전에 근대국가 건설이 필요한 동네라서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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