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95세셨으니 호상이라면 호상이었지요.
저도 오늘 하루를 휴가 내서 장지에 다녀 왔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장례법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큰할아버지 장례는 화장을 하고 예전에 돌아가신 큰할머니 산소에 합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막내 당숙이 공원묘지에서 일하시는 분이라 굉장히 깔끔하고 능숙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오신 손님들이 모두 칭찬할 정도였죠.
몇 달 전에 아버지를 산에 모신 저로서는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전 아버지를 매장했습니다. 어머니가 화장으로 하자고 하셨지만 제가 매장을 밀어 붙였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확실히 화장은 편하고 깔끔합니다. 손님 접대하기도 좋구요.
일단 매장을 하자면 일손도 많이 필요하고, 땅도 있어야 되고, 일꾼들 대접도 해야 하고, 번잡스런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덕택에 손님들 치르는 일도 굉장히 힘들어지죠. 더군다나 가족 수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은 이렇게 일손이 많이 가는 매장은 현실적으로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화장으로 가는 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이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이걸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대체 장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산 자를 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돌아가신 분을 위한 것입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떤 장례법으로 할 지 다시 한번 생각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매장한 것은, 비록 숨을 거둔 몸이라 하더라도 감각은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지만 - 돌아가신 분들이 대답을 할 수는 없으니 - 시체에 아직 신경이 살아 있고 감각이 남아 있었다는 사례는 많이 존재합니다. 아직 몸이 다 식지도 않았는데 뜨거운 불 속에 넣는다는 것은 저도 동생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더군요. 현실적으로는 매장할 땅이 있다는 것도 있었지만요.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 도전 2:118 -
혼과 넋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돌아가신 분의 신체는 넋에 연결이 됩니다. 사실 매장을 하나 화장을 하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고인의 신체가 없어지는 것은 같습니다. 매장은 넋을 천천히 땅으로 돌아가시게 하는 것이고 화장은 빨리 가시게 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가마 태워서 보내드리는 거랑 KTX 태워서 보내드리는 거랑 비슷합니다.
이렇게 보면 무슨 차이인지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저도 써놓고 보니 그러네요. ^^;; 자손들이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면 될 거 같습니다.
하지만 또 한가지 화장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바로 고인과 함께 하는 느낌의 문제인데요.
제가 아버지를 매장하면서 느낀 것은,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나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제 손으로 아버지를 직접 관에 넣고 제 손으로 땅에 묻어 드렸습니다. 언제든지 시골에 내려가면 아버지를 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은 죽음과 삶은 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분들에 대해서도 산 사람을 대접하는 것과 같이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술을 드립니다. 한마디로 신명은 육신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시골 아저씨들을 보니까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죽은 분들이 바로 곁에 계셔서입니다. 시골에서는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논에서 일하다가 고인이 생각나면 산으로 술 한병 들고 올라가면 그만입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시공간, 그것이 우리 전통사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떨까요. 화장장에 가서 느낀 것은 철저한 분리의 느낌이었습니다. 시신을 태우는 소각로는 산 사람의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서 유리벽 너머에 존재합니다. 화장장의 기사에게 관을 인도하는 순간 유족들은 지켜 보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어집니다.
시신이 재가 될 때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그제까지 살아계셨던 분이 어느 새 너무 멀리 가버리신 느낌이 들어서 안쓰러웠습니다. 이건 분명히 제가 아버지를 매장할 때의 그 느낌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농촌 전통문화가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문화는 죽음과 삶을 분리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사후세계와 신명의 음호를 믿는 저로서는 이것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단지 매장과 화장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접하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죽음도 우리의 삶의 일부분일 진데 그것을 너무 멀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가볍게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정리가 안된 것 같은데 그냥 오늘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서 적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