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깡패 동원. 최악의 최후를 맞으려 하는가 2MB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의 정체

드디어 2mb가 정치깡패까지 동원했다. 4.19 세대인 그가 본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분명 그의 선배들은 4.19 당시 정치깡패들에게 무참히 폭행당했던 고려대 학생들이 아닌가. 그들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무엇을 알아 들었던 것일까?

우석훈 박사가 대한민국의 파시스트화를 걱정했을 때, 나는 그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시민의식이 그 어떤 나라보다 높은 이 나라가 그리 될 리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고 조중동이 여론몰이를 하면 안 될 게 무엇인가? 이미 인터넷 여론을 탄압할 법적 장치는 모두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시민의식이라는 것도 명백한 폭력과 심리적 압박, 여론몰이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난 지금 정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 2mb는 명백하게 독재의 길로 가고 있다.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그의 무능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심재철을 회유해서 서울역 회군을 시킨 다음 광주에서 유혈사태를 벌였다. 극악한 범죄행위지만 한편으로는 유혈을 광주라는 지방도시 한 곳으로 국한시킴으로서 더 이상의 대규모 유혈사태를 막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2mb는 이 정도의 전략적 사고능력도 없어 보이며, 이 사태가 계속 진전될 경우 서울에서 군을 동원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국에 계엄령을 내리고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감시하고  시위 진압에 군을 동원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생각하기도 싫지만 1980년 5월의 광주와는 비교도 안될 대규모 유혈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경찰들이 시위대에 발포한 결과 이승만은 하와이로 쫓겨 났다. 만약 군이 서울에서 발포한다면... 아아 더이상 생각하기 싫다. 원래 정권이 무능하면 무능할 수록 많은 유혈이 발생한다.

현재 하고 있는 것만 보면2mb는 문자 그대로 독재자가 되려 하고 있다. 정부 인사는 전부 측근과 종복들로 채우고, 공공기관은 전부 낙하산으로 갈아치우고, 언론은 통제하려 한다. 이것이 독재가 아니면 무엇인가? 물론 2mb가 독재를 하려 해도 제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2mb는 전의 그 어떤 독재자보다도 자질이 떨어진다. 청와대와 정부 단속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대운하 없다고 할 때 국토부에서는 대운하 공개추진을 말하고 있는 게 지금 2mb 정부의 수준이다.

2mb가 반드시 새겨야 할 사실이 있다. 비정상적이고 비법적인 수단을동원한 독재자의 말로는 언제나 비참했다는 것을. 검은 셔츠당의 폭력으로 집권한 무솔리니는 총살 당해 메달렸고 돌격대와 SS를써먹던 히틀러는 전세계를 전화 속에 몰아넣고는 결국 자결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돌아오지도 못했고 어용단체잘 써먹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어찌 되었는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 물론 프랑코나 피노체트 같이 오래 오래 해먹고 곱게 간 독재자도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스페인도 아니고 남미도 아니다. 이미 독재자를 2번이나 쫓아낸 경력이 있는 시민의 나라란 말이다.

이명박에게 경고한다. 차우셰스쿠가 되고 싶은 생각인가?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꼼수 부리지 말고 시민에게 항복하라고. 그것만이 무사히 일생을 마칠 수 있는 길이라고. 인도적인 견지에서,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서, 그가 무사히 천수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by 함부르거 | 2008/06/05 20:00 | 역사 | 트랙백 | 핑백(3) | 덧글(0)

할아버지와 2차대전

역사와 서민들의 이야기 에서 트랙백

할아버지가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가신 적이 있다는 것은 어릴 때 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종의 참전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2006년 경의 일이다. 그 때 정부에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조사(헥헥 길다)를 하는 것에 고무되어 우리도 보상 한 번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작은아버지가 부추기고 나와 동생이 나서서 할아버지의 증언(이랄까 이야기랄까)을 채록한 것이다. 나중에 피해자로 인정서를 받긴 했는데, 그거 말곤 아무 것도 없다. 할아버지는 별 관심이 없는 척 하시면서도 어떻게 되어 가나 간간히 질문을 하시곤 했다. 아마도 젊은 날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많이 하신 모양이다.

오히려 이제는 그 역할을 하던 위원회도 폐지 한단다. 참 뭐랄까 나라가 점점 더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일제 피해자 분들은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1945년 5월 경에 일본군에 징집되서 하마마쓰 근처 비행장으로 끌려가셨다. 일본군도 그 때는 막장이어서 그랬는지 군사훈련도 거의 없었고 총도 안쥐어 주고 작업이나 시켰단다. 아마 제2 국민역인가 해서 실전부대는 아니었던 듯 싶다. 장교들도 전부 노인네들이었단다. 중위가 50대 대위가 60대 였다니 아마 러일전쟁이나 1차대전 참전 예비역이었던 모양이다.

구일본군 하면 구타나 가혹행위가 연상되는데 할아버지의 부대는 조선인들만 모아 놔서 그런 것도 없었다고 한다. 하다 못해 작업도 별로 없고 산으로 들로 계속 이동하는 게 일이었다고. 아마도 지휘관이 별 의욕도 없고 오로지 살기 위해서 폭격을 피해 돌아다닌 게 아닐까 추측한다.

가장 힘든 것은 밥을 굶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밥 한 끼 주는데 양이 적어서 고생이었다고. 가끔씩 고구마나 감자 캐는 일 돕는 작업을 가곤 했는데 그 때는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한번은 주둔지인 비행장을 미군 B29들이 공습했단다. 방공호에 들어가서 다치거나 하지는 않으셨다는데, 폭격 어땠냐는 손자의 질문에 "아무 것도 없더라"는 아주 짤막하고 담담한 대답이셨다. 근데 그게 더 후덜덜하다. 폭격 끝나고보니 주변에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더라는 이야기니 말이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는 부대도 해체되어 버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이사지라는 곳에 계셨는데 하마마쓰까지는 걸어가고 시모노세키까지 기차를 탄 후 배를 타고 귀국하셨다.

그런데 군대 간다고 집에서 돈 깨나 싸줬던 모양인데 올 때는 차비도 없어서 집에 간신히 오셨더랜다. 왜 그랬나 했더니 같이 갔던 다른 사람들한테 배삯 기차삯으로 다 빌려주고, 당신님 표현에 의하면 "이것 저것 사먹느라" 다 써버리셨다고. 과연 무엇을 사 먹느라 그렇게 많은 돈을 쓰셨는지 심히 궁금했지만 할머니가 계신 관계로 못 물어봤다. 아직도 금슬 좋은 두 분 사이에 풍파 만들 필요 없지 않나. ^^ 암튼 지금도 할아버지는 먹는 거에 돈을 아끼지 않는 분이다. 얼마 전에는 동생이 할아버지 대접한다고 아무거나 드시라고 했다가 복집에 가셔서 왕창 털린(...) 적이 있다. 대인배 할아버지시다. ^^

그 때로부터 60년이 넘게 흘렀지만 할아버지는 그 때 돈 빌려줬던 사람들과 액수까지 아직도 기억하신다. "그 사람들 아직도 안 갚았다"고 툴툴거리시며. 할아버지 그 양반들 이젠 거의 돌아가시지 않았을까요. orz

할아버지가 2차대전에 관여한 것은 그게 전부다. 일종의 노동부대에 징집되어서는 3달 정도 일본 땅에서 있으면서 폭격도 당해 본 것. 그러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농사만 짓던 그 분께 그 경험은 아마도 강렬한 문화충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60년이 넘은 지금도 할아버지는 그 때의 일을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신다. 그 때 배운 일본 군가도 잘 부르시니 말이다.

트랙백한 글을 읽으며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는 아직도 들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 분들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by 함부르거 | 2008/04/20 00:44 | 역사 | 트랙백 | 덧글(0)

대동아공영권?

좋은 글을 발견해서 링크 건다.

대동아 공영권의 성격 분석

by 함부르거 | 2006/03/26 09:37 | 역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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