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만화

오오쿠

오오쿠 4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문화사(만화)
나의 점수 : ★★★★★

기발한 상상력, 탁월한 구성능력, 멋들어진 묘사, 위대한 스토리메이킹에 찬사를!




세상에 남자가 여자의 1/4 정도로 줄어든다면? 아니 그 이하로 줄거나 여자들이 남자보다 훨씬 많은 여초 사회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여러 소년 여려분이 생각하는대로 남자들이 여자에 둘러싸여 하하호호 웃으며 지내는 하렘 사회, 아니 남자의 천국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호모 좋아하는 거장 요시나가 후미 선생의 답은 이거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줄 아니? 어린 것들아.'

이 만화 오오쿠는 아주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에도시대에 어떤 질병에 의해 남성 인구가 여성의 1/5에서 1/4 정도로 감소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놀랍게도 결론은 '그래도 그렇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다. 무사들에게 서민은 여전히 쥐어짜이며 살고, 무사는 무사 나름대로 막부의 철권 아래서 전전긍긍하며 살고, 여전히 몸팔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세상의 주역은 여자들로 바뀌었고 몸 파는 건 남자들이 되었다는 것 뿐이지만.

오오쿠의 세계에서 남자들은 희귀한 존재가 되어서 권력이 있는 쇼군은 몇백명씩 오오쿠에 모아 놓고 남자를 독점하지만 - 아, 쇼군은 여성이다. - 가난한 집 여자들은 결혼은 커녕 유곽에서 남자를 사거나 다른 집 남자에게 돈 주고 아기씨를 부탁하는 게 보통이다. 뭐랄까 남녀만 바뀌었지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는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다. 요즘에도 부자 남자는 세컨드 몇 씩 데리고 살고 가난뱅이는 장가도 못가잖아.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사는 남자들이 과연 행복할 지는 의문이다. 혹여나 죽을까 고이고이 모셔져서 바깥 세상 구경도 제대로 못해,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어, 오로지 요구되는 것은 씨내리로서의 역할 뿐. 차라리 여자 없이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사는 게 낫지. 저런 처지면 남자건 여자건 비뚤어진단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런 사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게 좋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암튼 압도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실제 도쿠가와 막부의 역사를 절묘하게 오버랩시키면서 전개시키는 사건전개가 그야말로 일품이고, 남녀의 성역할만 바뀌었지 오오쿠의 구조와 환경에 대한 묘사가 절묘하고, 그 속에서도 러브스토리를 전개시키는 필력이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 역시 요시나가 후미라고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작가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정말 깊다. 거장의 칭호가 이젠 부족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내가 왜 이제까지 이 작품을 읽지 않았나 후회하면서, 다음권을 절실하게 기다린다.

by 함부르거 | 2009/09/20 00:15 | 만화+애니메이션 | 트랙백 | 덧글(0)

오늘 읽은 만화

하늘에 수놓이는 소리 1
진 토리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나의 점수 : ★★★





그래스 호퍼 1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다 히로토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나의 점수 : ★★★★




하늘에 수놓이는 소리는 사라져 가는 조인족의 이야기이다. 이 세계에서 조인족은 사라져 가는 종족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델로 마치 호모 사피엔스에게 밀려 사라진 호모 에렉투스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구성이 독특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다분히 공이 들어간 그림과 세세한 설정은 읽는 재미가 있다. 우리 인류도 언젠가는 이렇게 새로운 인류에게 밀려 사라져 가겠지...

그래스호퍼는 전선스파이크힐즈를 그린 작가의 작품이라 내용도 안보고 집어들었다. 역시 기대를 100% 충족시켜 주는 훌륭한 느와르다. 특이한 능력을 가진 킬러들이 나오지만 어딘가 현실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현실적 설정이 일품이다. 여성 캐릭터가 좀 약한 느낌이라 아쉽지만 읽는 재미는 만점. 그건 그렇고 이다 히로토는 느와르 소설의 만화가로 자리가 굳어지는 것인가. 하긴 그림도 연출도 느와르에 너무 어울려서 다른 장르의 작품에 과연 어울릴 지 모르겠다. ^^

by 함부르거 | 2009/09/06 02:46 | 만화+애니메이션 | 트랙백 | 덧글(0)

속도감 있는 청춘 느와르 - 전선 스파이크 힐즈

전선 스파이크 힐즈 1
하라다 무네노리 글, 이다 히로토 그림 / 서울문화사(만화)
나의 점수 : ★★★★





느와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정의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느와르의 요소로 악당, 범죄, 섹스를 꼽겠습니다. 세가지가 적당히 버무러져야 훌륭한 느와르가 되는 거죠. 주인공이 악당이고 범죄를 저지르며 섹스까지 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느와르의 요건을 만족한다 하겠습니다.

전선(戰線) 스파이크 힐즈의 주인공은 소매치기입니다. 악당이죠. 거기에 동료랑 짜고 더한 범죄까지 저지릅니다. 그것도 야쿠자 상대로요. 뿐만인 줄 아십니까? 1권에서 벌써 동정을 떼요. 마약까지 합니다. 마이클 콜레오네 대부님도 감탄할 만한 놈입니다. 주인공이 한 건 아니지만 살인도 나오죠. 이 작품은 분명 느와르 맞습니다.

헌데 말이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학생이기도 합니다. 시험 성적때문에 어머니한테 들들 볶이고 여자친구 만나는 데도 용기를 쥐어 짜내야 합니다. 위에서 악당짓 하는 거와 비교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순진한 녀석입니다. 이러던 아이가 연애도 하고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어른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면서 몰라보게 성장합니다. 만화 끝날 때 쯤에는 이녀석 어른이 다 되었어요. 이런 장르를 우리는 청춘물, 성장물이라고 하죠.

말하자면 이 '전선 스파이크 힐즈'는 청춘 느와르물입니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리지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가 합쳐졌습니다. 한번 손에 들면 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만화가 되었습니다. 숨막히는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사건묘사,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정통파란 이런 것이라고 웅변하는 듯 합니다.

저는 표지가 예뻐보인데다 하라다 무네노리라는 원작자 이름이 좀 친숙해 보여서 우연히 집어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7권까지 다 읽어버렸습니다. 다른 만화책들 먼저 읽으면서 막 졸고 있었는데 이 책 보면서 잠이 싹 달아났어요.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볼 정도였습니다. 위에 별 4개 줬습니다만 솔직히 별 다섯개 주고 싶은데 원작소설이 있어서 줄인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 1권이 2007년 3월, 마지막 7권이 작년 2월에 발매되었는데 제가 어째서 이런 작품을 그동안 놓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쉽게도 원작 헤이세이 톰소여는 국내 번역도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영화나 드라마화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디오 드라마만 있군요.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위에 설명만으로도 어떤 작품인지는 충분히 감 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라인 같은 것은 검색하면 다 찾아보실 수 있으니까요.

다만 1권에서부터 주인공이 동정 떼고 시작하는 거에는 좀 벙쪘달까요. 뭐 여자를 가지고 범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은 느와르물의 정통적인 수법이긴 한데, 이게 정말 달달해서 말예요. 보통 이런 이야기라면 좀 더 어두워져야 할텐데 전혀 어둡지가 않아요. 여주인공 키쿠치가 너무 데레데레해서 당황스러울 정도란 말입니다. 느와르이면서도 전혀 어둡지 않은 분위기는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이기도 합니다.

저라면 완전소중 키쿠치를 외치겠습니다만 여주인공이 처녀 아니라고 책을 찢거나 하는 요즘 오타쿠들은 감당 못할 캐릭터겠죠.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건가. 주인공은 고등학생인데 내용 자체는 성인들에게 더 어필하는 작품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여름날 밤에 더위를 잊게 해줄만한 느와르물로 이 만화를 추천합니다. 그림도 잘 그렸지만 무엇보다 스토리라인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아까 말한 그런 오타쿠가 아니라면 읽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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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거 | 2009/07/23 16:38 | 만화+애니메이션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짧지만 무거운 이야기 - 비터 버진

비터 버진 Bitter Virgin 1
쿠스노키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나의 점수 : ★★★★





비터 버진은 쿠스노키 케이의 최신작입니다.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소개를 보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단행본 4권짜리 짧은 만화지만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무겁고도 진지한 작품입니다. 이 작가의 전작이 걸즈 사우르스인 걸 생각하면 같은 작가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의부한테 지속적으로 강간당해서 아이 하나를 유산하고 한 아이를 입양 보낸 과거를 가진 여학생을 한 남학생이 좋아하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네... 한 문장으로 적었지만 전혀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이죠.

전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읽기는 심히 괴로운데 다양한 감정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 말이죠. 제가 읽기 괴롭다고 하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에게 많이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연출이나 스토리 진행이 자연스럽고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무거운 주제에 대해 어떤 환상이나 비약도 없이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잘 이끌어 나갑니다. 좀 덜 자란 무서운 아이 하나가 나오기는 하는데 극적 장치를 위해 넣었다고 보면 되는 수준이구요.

단행본 3권을 작업할 당시에 실제로 작가가 아기를 유산했다고 합니다. 마침 3권 내용도 비슷해요. 펑펑 울면서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저도 읽으면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놀라운 것은 담당도 전혀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단행본 후기를 보고서야 알았다는 거죠. 아니, 프로의식도 좋지만 그런 건 좀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여담이지만 전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들은 강간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보다도 중죄라고 생각해요. 이 만화에서 묘사된 것 처럼 강간피해자들이 마치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위축되는 것을 보면 막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요. 나쁜 건 강간범인데 왜 피해자들이 죄인같이 살아야 하는 건지... 아마 저라면 강간범 따위 38구경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려도 전혀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할 뿐입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by 함부르거 | 2009/06/23 22:44 | 만화+애니메이션 | 트랙백 | 덧글(2)

젊음이란 좋구나!!! 바쿠만

바쿠만 BAKUMAN 1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나의 점수 : ★★★★★






이 만화를 논할 때 일본만화계의 실상을 어쩌구... 천재니... 현실성이 없니... 하는 이야기는 모조리 제쳐두자. 그런 거야 읽으면 알 수 있는 거다. 다른 정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거고.

나는 이제 아저씨로 불려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 개인적으로는 좀 불만이다 - 여전히 사람 피를 끓게 만드는 정열과 꿈으로 가득찬 것들이 좋다. 내일의 죠(이 작품에서는 한국 출시명은 도전자 허리케인으로 번역)나 거인의 별, 스바루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하겠다는 의지, 정열, 꿈... 이런 것들이 떠오르면서 피가 끓는 기분을 느낀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말이지.

난 이렇게 생각한다. 꿈꾸는 것을 멈추는 순간 그건 이미 남자가 아니라고. 남자는 죽을 때까지 꿈꾸고 도전하기 때문에 남자인 거라고. 서양에는 그런 문화가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나 일본 같은 경우는 이런 남자를 죽이는 문화가 있는 듯 하다. 나이 들어서 꿈 이야기 하고 도전하고 그러면 우스운 사람 취급 내지는 바보 취급하지 않나. 그래도 예전에는 나이 들어 애 있는 사람한테만 해당되는 문화였는데 이제는 젊은이들까지 거기에 휘말려 버린 듯 하다. 일본이나 우리나.

이 만화의 주인공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았다. 아니 존재해 왔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이 그게 삶이냐. 그러던 그가 어떤 계기로 만화가의 꿈을 꾸게 되고,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결혼하자고 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한다. 난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다. 로맨틱 하잖아! 로맨틱이란게 무슨 연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꾸는 사람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로맨티스트다. 이런 인간들에 의해서 인류는 발전해 온 거 아니냐. 누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으며 누가 애니메이션 산업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생각했겠냐. 역사는 꿈꾸고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거다.

난 이 만화 속의 중3 꼬맹이들이 하는 모든 짓이 너무 좋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난데 없이 결혼하자고, 꿈을 이룰 때까진 사귀지 자고 말하는 건 역시 젊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나이 서른 넘어서 이런 이야기 했다간 따귀나 안 맞으면 다행이겠다. 도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0.001%, 10만명 중 1명만이 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것도 다 젊어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 만화는 시계추처럼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꿈도 희망도 없이 똑같은 길로만 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마음만은 그들보다 더 젊은 아저씨들이 던지는 메시지다. 꿈꿔라! 도전해라! 로맨티스트가 되라! 너희들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다!

아 씨... 어릴 적에 이런 이야기들을 때는 그냥 흘려 들었는데 이 나이가 되니까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좀 더 어른들 말씀을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잘 들을 걸...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쌓아올리는 과정이지만 그와 함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만화에 나오는 거인의 별의 한 토막 대사를 인용하겠다. 나에게,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사나이는 죽어도 앞으로 고꾸라져 죽어야 한다.


by 함부르거 | 2009/04/22 21:37 | 만화+애니메이션 | 덧글(0)

유쾌한 유사가족물, 걸어서 한걸음

여기 남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집을 나와서 하숙을 하며 학교를 다닙니다.

여기 여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녀는 하숙집의 관리인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쉽게 고백은 못하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여자 주인공만 모릅니다.

그리고 같이 사는 동거인들이 있습니다. 오타쿠 꼬마, 체육계 보케, 폐인 선생, 그리고 나중에 합류하는 부잣집 아가씨.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죠? 뭐 뻔하잖아요. 메종일각 이래 유사가족물의 전형 같은 배치 아닙니까.

이런 종류의 작품,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마호라바, 하야테처럼, 러브히나, 쪽보다 푸른, 기타 등등 잔뜩 있죠. 참 징하게도 많이 그려냅니다. 그래도 이런 게 재밌습니다. 참 신기하죠.


다케다 순의 '걸어서 한걸음'은 이런 유사가족물이면서 한편의 학원 코미디입니다.

배경을 먼저 살펴 봅시다.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는 고등학교 한 복판에 있습니다. 학교를 증축하는데 그 아파트만 안 팔았다나요뭐라나요. 덕택에 학생들이 오고 가면서 집안 살림을 다 들여다 봅니다. 빨래 너는 것도 옆 교실에서 다 보이고요. 유사가족물이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을 학교와 가정의 밀착화라는 공간배치 하나로 확 깨버렸습니다. 연재 첫 장면에서부터 학교 한 가운데 있는아파트를 보여 주면서 독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학교 한 가운데 집이 있는 덕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학교가도 된다든가 학교 풀장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든가 하는 거는 그 배치에서 나오는 쏠쏠한 잔재미 중 하나지요.

주인공을 볼까요. 가난뱅이입니다. 여자들 속에 둘러 싸여 있구요. 여자들한테 잘 휘둘립니다. 여기까지야 흔한 설정입니다. 그런데제법 잘났어요. 공부를 잘 해서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성적 1등을 놓치지 않습니다. 운동도 잘합니다. 딱 하나 컴플렉스가있는데 가난뱅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그 사실을 열심히 숨기고 다니죠. 누군가가 생각나죠? '타로 이야기'의타로지요. 하지만 타로처럼 구질구질하진 않습니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꽤 괜찮은소년입니다. 딱 하나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있는데 그건 연애지요. 좋아하는 여자하고는 자꾸 꼬이고 원치 않는 여자는 자꾸달라붙죠. 뭐 연애까지 제 맘대로 되면 만화가 진행이 되겠어요? ^^;;;

여주인공을 볼까요. 네. 엄마입니다.여신님입니다. 끝. 이런이런, 남주인공은 구구절절 설명해 놓고 여주인공한테 너무했네요. 근데 딱히 설명할 말이 안 떠오릅니다.너무 전형적인 캐릭터라서요. 그래도 충분히 매력적이긴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쪼들리면서 매일 감자만 먹어도 매력적인 건 매력적인겁니다.

다른 캐릭터들이 더 재밌습니다. 오타쿠는 알고 보니 괜찮은 집 아가씨였다든가, 운동 보케는 알고 보니 꽤나예쁜 청순녀 타입이었다든가, 선생은 구제불능이라든가, 부자집 아가씨는 꽤나 폭력적이었다든가. 뭐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동글동글 쭉쭉빵빵한, 귀여우면서도 늘씬한 캐릭터와 깔끔한 그림체를 가지고 기존의 재밌는 요소들을 적당히 잘버무린 다음 훌륭한 연출로 자기만의 요소를 살려서 내놓은 상큼유쾌발랄한 작품입니다. 기본이 잘 잡힌 작화와 연출은 시각적으로도상당히 유쾌한 기분을 줍니다. 장르가 되어버린 유사가족학원연애물(개인적으로는 메종일각류라고 부릅니다만)입니다만 뭐 볶음밥엔 새우볶음밥도 있고 버섯 볶음밥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맛있으면 그만이죠. 가벼운 기분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한다면서이만 마무리.


이미지 출처: 학산문화사

by 함부르거 | 2008/09/03 01:35 | 만화+애니메이션 | 트랙백

대한민국 원주민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으아~~~~
미치겠다 정말.
답답하고 눈물나고 화나고 웃기고...
이 작가의 지난번 작품 100˚C 도 그랬는데 나 이제 최규석 작가 팬 할래.

아버지 생각 참 많이 나게 한다. 어머니도 그렇고.

난 대학원 유학까지 갔다 올 정도로 편하게 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작가가 그리는 촌동네의 무지막지한 삶 - 그걸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 - 이 바로 아버지가,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시집 온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삶이다. 내가 이렇게 편하고 곱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무지막지한 삶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그리고 자식에게만은 경험시키지 않기 위해 뼈골 빠지게 노력하셨던 두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촌동네, 그 적나라한 본질을 이 책은 까발린다. 그 무지막지함이란!!!! 난 아버지 고향이 촌동네라 그런 삶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역시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겪으셨던 무지막지한 일들을 나와 동세대의 사람들이 겪었고 또 겪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책은 대한민국이라는 눈 핑핑 돌아가도록 변하는 나라에서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만화지만 그 어떤 학술서나 논문보다도 강력하게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그린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내 동생하고 동갑이다. 동생에게 이 책을 읽혀야겠다. 반응이 어떨 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머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분들의 세대에선 여자들이 희생하는 게 너무도 당연했으니까...

by 함부르거 | 2008/08/01 18:33 | 책 冊 Book Buch 本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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